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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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일흔한 번째 뉴스레터] 내가 OO를 할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내가 OO를 할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나는 엠마 골드만의 발언과 윌리엄 포프엘의 몸짓을 경유하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기어갈 수 없다면, 비틀거릴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곧 위험이 되는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우리에게 발전과 편리를 가져다줄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수직적 권력의 질서가 아니라, 서로의 취약함을 인정하는 수평적인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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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OO를 할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최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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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매일같이 분쟁과 전쟁이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국내외 뉴스는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이권과 경제의 흐름을 전하는 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세계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는 ‘정상(頂上)’을 향해 나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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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을 향한...
여기서 정상은 두 가지 뜻으로 풀이된다. ⑴ 특별한 변동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완전하고,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고, 연약하거나 차별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⑵ 최고의 상태: 높은 자리나 지위, 즉 국가의 최고 수뇌를 뜻하기도 한다. 정상성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26년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간의 충돌, 그리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이어지고 있다. 각국의 권력자들은 자국의 안보를 명분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마네이와 군 수뇌부를 사살하며 정치적·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이를 “나라를 되찾을 가장 위대한 기회”라고 표현하며 이후 발생할 이란 내부의 혼란을 그들 스스로의 몫으로 돌렸다.1) 이는 마치 폭력적 개입을 하나의 기회로 포장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사처럼 보인다. 한편 외신은 미국이 이번 작전에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와 팔란티어의 데이터 플랫폼 ‘고담’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기술적 우위를 부각시켰다. 이러한 보도 이후, 정부 및 군사 부문과 AI 협력을 이어온 팔란티어의 주가는 이란 전쟁 여파 속에서 한 주 동안 약 15% 상승했다.2) 전쟁은 정치적 사건일 뿐 아니라 기술과 자본의 흐름과도 촘촘히 연결된 경제적 사건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 국가는 연약함을 드러내거나 동맹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곧 안보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국가주의와 독재적 성향의 엘리트 권위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3) 이 세계에서 연약함은 곧 ‘나쁜 것’으로 간주되며,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제적 공격을 통해 힘을 과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경쟁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떠안는 것은 언제나 정상과 주류에서 밀려난 대다수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건강한 신체를 지니고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편리함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 역시 두 눈을 뜨고 두 발로 걷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감각은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정상성의 체계 안에 포섭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견고하게 우리를 둘러싼 정상성의 체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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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뉴욕 유니언 스퀘어에서 연설하고 있는 엠마 골드만(1916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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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의 혁명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 운동을 펼쳤던 페미니스트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춤을 출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이 문장은 사회정치적 권력과 투쟁이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이자, 혁명이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것은 더 이상 혁명이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라는 선언이었다. 이 말은 오늘날의 현실과도 공명한다. 극소수의 정상(頂上)에 선 이들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전쟁이 어떻게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춤을 출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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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William Pope.L, How Much is that Nigger in the Window aka Tompkins Square Crawl, 1991 © 2026 Pope.L. Courtesy of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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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에서 수직적인 것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로켓, 마천루, 레이건과 부시의 스타워즈 시스템 등. 모든 것이 세워져 있는 것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한다. 〈위대한 하얀 길〉과 같은 기어가기 작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보도에 사람이 누워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인간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수직성도 퍼 올려진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in thompson 2004: 73).
안드레아 레페키,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 퍼포먼스와 움직임의 정치학』, 문지윤 옮김 (서울: 현실문화연구, 2019), 219-220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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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불현듯 윌리엄 포프엘(William Pope.L)의 기어가기 작업을 떠올렸다. 정상을 향함, 즉 수직성의 질서에 대한 도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고 도시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그가 스스로 그 권력(수직성)을 포기하고 바닥을 기어가는 행위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미국 시민’, ‘중산층’, ‘남성’이라는 사회적 권력의 위치를 가진 몸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역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어 온 흑인의 위치를 자신의 신체와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기어가기는 이러한 권력을 일시적으로 내려놓고 수평성을 받아들이는 수행적 제스처이다.
안드레아 레페키의 말처럼, 그의 퍼포먼스는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던 자유로운 움직임에 대한 가정에 도전”한다.4) 우리는 도시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 자유는 특정한 신체 조건과 사회적 위치를 전제로 한다. 포프엘의 기어가기는 바로 그 전제를 흔든다. 자신이 정상성에 속함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지닌 연약함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기어가는 장소가 도시의 한복판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도로와 보도, 빌딩과 신호등, 건널목으로 구성된 도시의 구조물들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철제 구조물로 이루어진 안정적인 시스템을 상징한다. 그러나 신발도 탈것도 없이 온몸으로 바닥을 접촉하는 순간, 이 안정적인 세계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차가운 온도, 오염된 표면, 거친 마찰은 신체를 즉각적으로 위협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왔던 세계를 낯선 위험의 장소로 바꾸어 놓는다. 포프엘의 기어가기는 바로 이러한 감각의 전환을 통해, 정상성과 주류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빠르게 세계의 경험을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특정한 신체와 조건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나아가 스스로 그 정상성/수직성을 기꺼이 포기하는 행위를 통해, 그 질서에 포섭되어 있던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수평적인 시선에 눈뜨고 그것과 연대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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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참하지 않음
여기서 나는 엠마 골드만과 발언과 윌리엄 포프엘의 몸짓을 경유하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기어갈 수 없다면, 비틀거릴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곧 안전에 위협이 되는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세계가 우리에게 발전과 편리를 가져다 줄지언정 언제든지 그것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때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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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美, 이란 하메네이 제거… 세계를 뒤흔든 난폭한 ‘힘의 시대’」, 『동아일보』, 2026년 3월 1일.
2) 「팔란티어 주간 15% 급등…이란 전쟁 수혜주로 부상」, 『디지털투데이』, 2026년 3월 7일, https://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8228 (접속일: 2026.3.8).
3) “My Predictions for 2026: A Year of Rising Autocrats and Political Normalisation,” Medium, https://medium.com/policy-panorama/my-predictions-for-2025-1c11da8279ec (accessed 2026.3.8).
4) 안드레아 레페키,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 퍼포먼스와 움직임의 정치학』, 문지윤 옮김 (서울: 현실문화연구, 2019),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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