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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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예순일곱 번째 뉴스레터] 열대어와 황소개구리가 만나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열대어와 황소개구리가 만나: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개인전 ≪흐르는 말처럼≫, ≪몸처럼 흐를 때≫, 오염된 심해에서 영원히 유영할지언정 녹아내리지 않으리]
예술가 듀오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를 결성한 강예슬미는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으며 백재화는 경상북도 포항에서 나고 자랐다. 이들은 독일 브레멘과 함부르크를 기반으로, 퀴어-이민자로서 포착한 사회 불균형을 “유동성” 띈 이미지로 풀어낸다. 2025년 한국 첫 개인전 ≪흐르는 말처럼≫(갤러리 인, 서울)과 ≪몸처럼 흐를 때≫(아트 포 랩, 안양)에서 작가들은 그간 중점적으로 다뤄온 정체성을 고향에 서린 지역성과 교차시킨다. 타국의 이주민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는 자국의 이주민 소카와 심낭을 만난다. 물이 가득 흐르는 도시들을 넘나들며, 퀴어-이주-노동이 얽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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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어와 황소개구리가 만나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개인전 ≪흐르는 말처럼≫, ≪몸처럼 흐를 때≫, 오염된 심해에서 영원히 유영할지언정 녹아내리지 않으리
배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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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의 작업은 화사한 빛을 띤 채, 관성에 젖은 신경계를 자극해 안온하리라 믿고 싶던 세계를 흔든다. 마치 바다에 둥둥 떠다녀 감출 수 없는 오색찬란한 유해물질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에 인공적인 색채를 덧대어 세계를 교란시킨다는 점이 닮았고, 무력한 존재를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듀오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시각화해 온 퀴어-이주 정체성은 매끄러운 자본주의 질서를 균열낸다. 작가들은 퀴어하여 이주할 수 밖에 없었으나, 도래한 땅에서 또 다른 부력에 밀려났다. 그렇게 그들은 유영하며 여러 변두리와 감응할 파동을 나아내는 듯하다. 얼어 붙을 듯한 추위로 가득한 12월,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의 개인전 ≪몸처럼 흐를 때≫와 ≪흐르는 말처럼≫은 짧은 시간을 따라 흘렀다. 안양 아트 포 랩에서는 듀오를 이루는 예술가, 강예슬미와 백재화의 마음이 떠다녔다. 서울 갤러리 인에서는 캄보디아에서 건너와 포항에서 노동하는 이주민 소카(가명)와 삼낭(가명)의 말들이 맴돌았다. 이 전시들은 형산강으로부터 안양천을 거슬러 한강에까지 다다르는 이야기다. 근데 이제 베저강의 물과 팔당댐의 안개를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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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몸처럼 흐를 때≫(2025, 아트 포 랩, 안양) 전시 전경. 사진: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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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처럼 흐를 때≫, 보랏빛으로 엉키는 심해 속에서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는 한국 첫 개인전에서 자신들의 퀴어-이주 정체성을 중요하게 드러내기 장소로 안양을 골랐다. 이 도시는 강예슬미의 고향이자 ≪몸처럼 흐를 때≫ 전시공간 아트 포 랩의 근거지로, 하천을 끼고 있다. 20세기 후반 내내 공단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오염되었던 안양천은 21세기가 훨씬 지나서야 정화를 시작했다. “액체성”에 집중한 전시는 안양 지역성을 토대로 하기에, 티끌 없이 맑게 흐르지 않더라도 거듭해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들의 여정을 비춘다.
그리하여 지하층 아트 포 랩으로 향하는 계단은 작가들이 교차해낸 내면 속으로 가라앉은 길이다. <힘껏 외치되 범람하지 않는>은 부표로 역할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마이크 센서를 연결하는 회로는 끈으로 휘감겼다. 짙은 분홍색과 엷은 분홍, 분홍 섞인 진한 보라색. 끈의 색은 고정되어 다른 색으로 뒤덮여도 원래 색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조를 넘나드는 물의 색은 유동적이다. 몸은 물을 잔뜩 머금기에 붉던 푸르던 다채로운 농도로 존재하고 뒤섞이며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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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몸처럼 흐를 때≫ 전시 전경. 사진: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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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외치되 범람하지 않는>의 투명한 벽 사이를 헤엄치는 물들이 최종적으로 도래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 전시에서 아트 포 랩의 아치형 방이 그 미래를 숨겨놓은 심해처럼 느껴졌다. <몸처럼 흐르는> 파편들을 베저강을 머금고 안양천의 물을 분사하며 어두운 방 안 공기를 적신다. 연꽃과 배, 향로와 뇌가 드러난 얼굴, 부유하거나 순환하는 상징들을 흩뿌려두며,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는 <흘러와서 다시 흘러가는> 팔당댐을 거쳐 <유유히 흐르고 싶은> 환상세계를 유영한다. 심해에서 빛나는 해파리 같은 오브제와 기하학 도형은 현실의 물결과 조우하기도 인공 은하수와 네온 언덕 너머를 굽이치기도 한다. 아마도 작가들이 퀴어-정체성을 탐구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가장자리까지 훌쩍 닿아가는 마음은 어떤 세계든 흘러가고자 하는 유동성을 내재화하였던 데에서 비롯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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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흐르는 말처럼≫(2025, 갤러리 인, 서울) 전시 전경. 사진: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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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말처럼≫, 부유하는 사람들의 깊은 곳을 유영하며
“어머니가 나를 떠났다” “나는 가족도 부모님도 정말 ㄱ그ㄻ빋가”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결국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역ㄱㄱ 시 그것을 위해 참 아야 한다” 플로어 맵이 인쇄된 종이를 쥐기 전까지, 전시 공간에서 가장 먼저 이목을 끄는 작업은 샛노란 가짜 책 다섯 권이었다. 책 표면마다 한쌍을 이루어 인쇄된, 어색한 한국어와 알 수 없는 크메르어는 포항에서 노동하는 캄보디아인의 문장들이다. 작가들은 삼낭에게서 네 마디를, 소카에게서 한 마디를 골라냈다. 어떤 말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과 주고 받았을 수많은 대화 가운데서 가족을 곱씹고 학교를 끝마치지 못했다거나 낯선 땅에 막 도착했다는 구절에 유독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가 이끌렸을 까닭을 상상해본다. 그 마음은 어디에서 흘러와 어디로 흐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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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흐르는 말처럼≫ 전시 전경. 사진: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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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말은 돌이 되어 쌓인다. ≪흐르는 말처럼≫이 열린 갤러리 인의 첫 방에서는 군데군데 엷은 색 조약돌이 흩어져 있다. 그저 모여 있는 돌도 있고 작은 탑을 이룰 정도로 쌓여 있는 돌도 있다. 독일의 이주자와 한국의 이주자가 함께 운제산(雲梯山)을 오른다. 작가 듀오 중 백재화가 나고 자란 지역이자 삼낭과 소카가 살고 노동하는 도시 포항의 산으로, 일찍이 혜공과 원효대사가 구름을 다리처럼 건너다녔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작은 자막들로 잡담들이 세 화면을 오간다.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며 등산을 소재로 한국과 캄보디아 자연을 비교하던 이야기 사이로 종종 커다란 글씨가 화면을 채운다. “캄보디아를 아느냐고 물으니 싫어한대요” “한국 사람들 피해 입어서요” 바래진 잎과 앙상한 가지로 칙칙해진 산을 배경 삼아 경멸에 찬 발언들이 노란 파스텔톤의 유려한 글씨로 기록된다. ‘포항 운제산’이라는 이름, 어색한 한국어로 10년 정도 산에 왔다는 평범한 말들도 같은 서체로 보여지기에, 삼낭과 소카가 들어야 했던 말들은 경쾌한 일상에서도 예기치 못하게 부딪힐 수 있는 혐오라는 현실을 드러낸다. 운제산에서 구름 사이를 유영했던 고승들과 달리, 동시대 인간들인 네 명의 이주자들은 물리적으로는 땅을 밟고 산을 오른다. 한국에서 독일로,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옮겨갈 때에도 발을 바닥에 붙인 채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유한다.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의 영상들은 곳곳에서 스며들고 흘러가길 반복하는 영혼을 현실과 가상의 오브제에 담아 만든 세계이다. 3D로 만든 보랏빛 하늘과 검푸른 심해에서 사람들이 떠다닌다. 마젠타와 시안으로 흠뻑 젖은 포항 풍경과 캄보디아 석상과 미지의 풍경 조각을 기하학 도형으로 엮어낸 화면들이 오간다. 캄보디아 주택 프떼아가 3D 바다에서 길을 잃고, 파도를 이끄는 손은 글리치화 되어 부서진다. ≪몸처럼 흐를 때≫에서 <흘러와서 다시 흘러가는>이 가장 깊은 벽면에서 ‘유유히 흐르고’자 했던 작가들의 독백을 관조했다면, 이 작업은 두 방 사이 경계에 서서 소카와 삼낭의 내밀한 이야기 앞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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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흐르는 말처럼≫ 전시 전경. 사진: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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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색 기둥으로 지지된 모니터 세 대에서 각기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관람객은 오른쪽 또는 왼쪽 헤드셋을 쓰고 담담한 목소리로 읊어가는 낯선 말을 들으며 화면에 집중한다. 현란한 정경과 세련된 그래픽이 겹겹히 감싸뒀던 소카와 삼낭의 구술을 번역한 한글 자막에서 그들의 삶이 구체성을 얻고 뇌리에 들어온다. 가족을 잃고 돈이 없어 고립되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찾아 유동하는 존재들. 가운데에 놓인 모니터에서 이주자이자 선주민인 작가들이 이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열기까지 주고 받은 말들이 고였다 흩어지고 스쳐간다. <유유히 흐르고 싶은>에서 작가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동시에 노출하고자 마스크를 덮어쓰거나 오브제를 내세웠다면, 이 영상에서 깻잎과 버섯, 크메르 석상과 뗏목으로 이주민 개인을 가리고 그들의 역사와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모니터 옆 선반에 드문드문 놓인 캄보디아 책들을 다시 들여다 본다. 그리고 여린 색을 머금은 도자들을 작게 쌓아올린 탑을 발견한다. 앞서 영상 작업 속 심낭은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며 쌓았던 돌탑을 향한 화답이었다.
“캄보디아 전부 싫대요. 그런데 모든 나라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있어요.” 작가들을 거쳐 관람객에게 닿은 말을 되짚어 본다. 2025년 한국인 살해 사건과 더불어 대규모 스캠 사태가 국내 언론에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이전까지 캄보디아는 기회의 땅이었고 캄보디아인은 값싼 노동력 혹은 계몽대상이었다. 그러나 범죄조직 대부분이 중국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분노는 한국 거주 캄보디아 이주민들에게 몰렸다. 코로나 시기 퀴어 공동체를 향한 한국에서의 조롱과 동양인을 겨냥한 1세계의 폭력들, 9·11테러 이후 무슬림에게 가해진 범죄처럼 어떤 불행이 닥쳤을 때 그 화살은 가장 쉬운 대상을 향해 겨눠진다. 개인이 맺은 우정이 반복되는 혐오를 종식할 수는 없을지라도, 작가들은 대화를 지속하며 관계를 구축해가는 기록을 남긴다.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의 개인전, ≪몸처럼 흐를 때≫와 ≪흐르는 말처럼≫은 우울한 심해 속 오염을 한풀 걷어낸다. 중첩된 시기 두 편의 개인전을 연결하며, 작가들은 퀴어-이주 정체성을 풀어내는 작업을 안양에서 캄보디아인 소카와 삼낭의 노동-이주 목소리를 귀담은 작업을 서울에서 선보였다. 한국에서 처음 존재감을 내보일 전시에서 작가들은 그간 작업에서 이주와 퀴어를 엮어낸 유동성이 어떤 어려움에도 상냥하게 흐르리라 예고한다. ≪흐르는 말처럼≫은 “한국에서 이주민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는 선주민의 관점으로 작업을 전개한다.”고 밝힌다. 소카와 삼농이 기꺼이 삶을 털어놓고 작가들과 어울리기에, 쌓아올린 신뢰는 전시와 작업 곳곳에 전제된다. 오히려 평범한 산행과 포항 면면들, 상품으로 도출해야 할 깻잎들, 크메르 기호들을 오가는 시각적인 대비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필요에 따라 얼마나 저렴하게 동원되고 쉽게 도구화되는지이다. 1970년대 국민 영양과 농가 소득을 위해 쉽게 수입한 뒤 문제시했던 황소개구리의 패턴은 간편하게 인간에게로 옮겨간다. ≪몸처럼 흐를 때≫에서 열람가능한 포트폴리오의 작업이 연결되어 떠오른다. 작가들은 자본주의에 매력적으로 부합하는 퀴어 공간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하며 사회 취약 계층의 접근성을 제한하고 퀴어 공동체 내부에서는 계급적 분열을 심화시키는 현실을 담은 작업을 소개한다. 어쩌면 밀려난 이들은 한국에서 화려한 관상용으로 취급받지만 멋드러지고 매끄러운 유행에서 벗어날 위협에 놓인 열대어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거대한 질서가 퍼트리는 오염들을 뒤집어쓰고 밀려나더라도, 이들이 계속해서 어디론가 헤엄치며 빛을 이어가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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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인용구는 슬미 앤드 재엔더플루이드 영상작업 및 포트폴리오 내 언어, 그리고 제람이 쓴 ≪몸처럼 흐를 때≫와 ≪흐르는 말처럼≫ 리플렛에서 가져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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