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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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쉰다섯 번째 뉴스레터] 계속 열중해서 걸어라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열중해서 걸어라]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 일, 그리고 전복적 행위로서의 ‘걷기’. 이러한 맥락에서 전술적 걷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도’를 형성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중국 쿤밍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청 신하오(Cheng Xinhao, 1985–)의 작업과도 공명한다. 그는 물리적 공간을 직접 걸으며 경험하는 퍼포먼스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이를 통해 신체와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색한다. 이때 그는 단순히 도로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걷는 행위를 통해 '도로'라는 구조물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살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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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걸음은 흔적을 남긴다. 흔적이란 "지속적인 움직임에 의해 단단한 표면에 남은 표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걷는 행위가 과연 가시적인 흔적을 남기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걸음은 너무도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이 단순한 행위조차 사회적·문화적 힘과 개인 사이의 역학 속에서 형성된 실천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1925–1986)는 『일상생활의 실천(The Practice of Everyday Life)』에서 도시 보행자들의 ‘걷기’를 의미화의 실천에 대한 수행으로 다루었다.2) 세르토에게 있어 걷기는 일종의 발화 행위인데, 그것은 보행자로 인해 공간의 질서가 실체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행자는 기존 질서를 따를 수도, 그것을 변형시킬 수도 있다. 진입 금지 표시가 된 길을 걷지 않는다면 그것은 금지된 길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길이 된다. 이렇듯 보행자가 어디를, 어떤 이유로, 그리고 어떻게 걷는가는 도시를 뒤틀고 파편화하며, 부동의 질서에서 벗어나게 만든다.3)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 일, 그리고 전복적 행위로서의 ‘걷기’. 이러한 맥락에서 전술적 걷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도’를 형성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중국 쿤밍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청 신하오(Cheng Xinhao, 1985–)의 작업과도 공명한다. 그는 물리적 공간을 직접 걸으며 경험하는 퍼포먼스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이를 통해 신체와 공간이 맺는 관계를 탐색한다. 이때 그는 단순히 도로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걷는 행위를 통해 '도로'라는 구조물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살핀다.
2. 어디를
〈지층과 표석〉(2023–2024)은 급속한 도시 개발이 진행 중인 작가의 고향 윈난성에서 수행한 장거리 도보 프로젝트다(도 1). 청은 현재 중국 서남부의 320번 국도로 지정된 옛 버마 공로(Burma Road)를 따라 1,000km 이상을 걸었다. 이때 버마 공로는 단순한 교통 경로가 아니라 지정학적·군사적·경제적 중요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역사적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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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청 신하오, 〈지층과 표석〉, 2023-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1분 58초, 스틸 이미지.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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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공로는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해상 봉쇄를 우회하고 연합군의 물자를 중국에 조달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과 영국 식민 정부가 공동으로 건설한 전략적 도로로,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당시 버마의 수도였던 랑군(현재 미얀마 양곤)까지 연결되었다. 이 지역은 석탄, 광물, 보석 등 주요 자원의 보고이자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을 지녔다.
하지만 이 도로는 전쟁의 산물에 그치지 않는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도 이미 역마차와 대상들이 오가던 교역로였고, 19세기 이후에는 아편전쟁과 영국 식민 지배의 영향 아래 국제적 무역로로 활용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고속도로와 철도로 대체되었지만, 여전히 지역 경제와 교류의 중요한 연결점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의 작업은 버마 공로를 단순한 교통 경로가 아니라, 시간이 겹겹이 쌓인 장소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요컨대 그는 이 공간을 단순한 지도상의 선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층위를 드러내는 수행의 장으로 변형시킨다.
3. 어째서
이렇듯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도로’와 ‘교통’이라 부르는 것들이 결코 동질적인 존재가 아니며, 각각 서로 다른 역사적·경제적 맥락 속에서 성립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청은 어찌하여 굳이 걸어다니는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나는 장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식을 좋아한다. 마치 탐침(probe)처럼 말이다."라는 그의 발언처럼, 청에게 있어 매체는 그저 카메라뿐 아니라 그의 몸 그 자체다.4) 즉, 작가에게 있어 걷기라는 행위는 감각, 사건, 풍경, 이미지, 역사 간의 복잡한 연결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 지역 특유의 물리적 환경도 보행의 수행성을 결정짓는다. 높은 산과 깊은 협곡, 변화무쌍한 날씨는 이동하는 신체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익숙했던 세상은 점차 거칠어지고, 보행자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속에 자신을 던지게 된다. 계획이나 관성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보행자는 민감하게 조정하거나, 용감히 미지의 상황에 뛰어들어야 한다.
실제로 청은 이 프로젝트 수행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재활 후 그는 다시 버마 로드로 돌아와 비틀거리면서도 걷기를 이어갔다. 이 지속적 행위 속에서 그의 신체는 단순한 주체를 넘어, 환경과 주변 세계를 감각하는 매개체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철도와 흙길, 그리고 국경을 따라 새로운 선을 긋는 하나의 붓질이 되었다.
4. 어떻게
이어서 청이 이 길을 어떤 방식으로 걸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속도로와 기찻길을 따라 걷는 그의 행위는 철도의 본래 기능을 거부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고속도로와 철도는 원래 장소 간의 이동을 빠르게 하는 교통수단이지만, 작가는 이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개별적인 요소들을 경험하고 그 주변 환경을 탐색함으로써 현대적 교통 논리를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몸은 마치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도구처럼 작동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버마 로드는 시간이 중첩된 역사적 장소이다. 그러나 차나 기차를 통해 빠르게 이동하는 경험 속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쉽게 인식하기 어렵기에, 그는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며 그곳의 시간성을 직접 체현하려 한 것이다.
한편 그가 돌멩이를 발로 차며 보행했다는 점 또한 주목된다(도 2). 여기서 돌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이동성의 물리적 증거가 된다. 돌은 걷는 동안 점점 마모되며 변화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와 관련하여 청은 “내가 걷는 길은 이미 존재하는 길이지만, 내가 걷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흔적이 남겨진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이동이 단순한 지리적 탐색이 아닌 시간적 개입임을 시사한다. 그 결과 돌을 발로 차며 이동시키는 그의 행위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퍼포먼스로 확장된다. 요컨대 돌과 그의 신체는 일종의 협력 관계를 맺으며, 돌의 변화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는 행위를 수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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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청 신하오, 〈지층과 표석〉, 2023-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1분 58초, 스틸 이미지. 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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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가며
2024년 7월 31일, 1년 반에 걸친 부상과 재활, 그리고 건기와 우기의 교차를 지나 청 신하오는 버마 국경에 도착했다. 총 41일 동안 그는 약 1,000km를 걸었다. 여행 이틀째 발로 차며 이동했던 첫 번째 돌은 우연히 깨졌고, 이후 대체한 두 번째 돌은 800km 이상을 견디며 점차 작은 자갈로 닳아갔다. 긴 여정의 끝에서, 그는 그 돌을 국경을 흐르는 강물에 던졌다.
결론적으로, 〈지층과 표석〉에서 청의 천천히 돌을 차며 걷는 행위는 단순한 보행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간을 변형하고 새로운 흔적을 남기는 실천이다. 일반적으로 도시 계획자나 국가가 설정한 전략적 공간은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지만, 수행성을 지닌 보행자는 자신의 동선을 통해 기존 공간의 규율을 무력화하거나 전유할 수 있다.
그의 걸음은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면서도 현재의 몸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재구성한다. 기존 지도 제작 방식은 고정된 조건들을 중심으로 한다면, 청의 작업은 변화하는 감각적 경험과 신체적 개입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실천"해낸다. 그 결과, 버마 로드를 따라 차고 간 돌이 남긴 새로운 지층은 우리로 하여금 공간이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신체적 경험과 시간적 축적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는 것임을 목도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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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김달진닷컴 패널리뷰에 게재된 『미술사와 비평 (40) 청신하오 Cheng Xinhao』를 일부 수정·편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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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인용구는 일본 최초의 즉흥 연주 그룹 온가쿠를 공동 창립하고, 1960년대 초에는 플 럭서스 그룹과 함께 활동했던 사운드 아티스트 다케히사 고수기(Takehisa Kosugi, 1938-2018)의 악보에서 따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책 참조. Waxman, Lori. Keep Walking Intently : the Ambulatory Art of the Surrealists,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and Fluxus. Berlin: Sternberg Press, 2017.
2) 백영주, 「‘걷기’의 의미 양상과 예술적 실천 - 미셸 드 세르토의 ‘공간 실천’과 도시 개념 을 중심으로」, 『인문콘텐츠』 46 (2017): 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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