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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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쉰 세 번째 뉴스레터] 투명하다는 믿음과 슬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투명하다는 믿음과 슬픔]
‘투명성’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깊은 연못이 맑아 보이는 착시적 효과에 불과한가? 기술과 자본이 구축한 시각적 질서는 실제를 반영하는가, 혹은 그것을 은폐하는 기제에 지나지 않는가? 여기에 단편화된 진실의 조각을 수집하고 현실의 흐릿한 단면을 몽타주하는 작가들이 있다. 권병준, 전혜주, 정승의 작업을 통해 기술과 자본이 형성한 질서를 재검토하고, 그 균열 속에서 드러나는 파동의 연속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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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어떤 순간을 투명하게 담아낸다는 생각은 이것이 (조작이 아니더라도) 꾸며지거나 편집된 것일 수 있다는 다른 해석을 무시한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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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uation Room is a photograph taken by Pete Souza, Chief Official White House Photograp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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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일, 이른바 “상황실”이라고 불리는 사진이 미 동부 시간으로 오후 1시에 백악관의 플리커(Flickr) 계정에 올라왔다. 이 사진은 곧 이 유명한 사진 공유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조회된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2)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의 비밀 은신처를 기습하는 야간 작전을 중계하는 드론이 보내주는 실시간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 사진은 무수히 많은 ‘장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믿고 있는 것들이 조작된 것일 가능성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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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상황실이란 권력 네트워크의 핵심 장치)는 많은 시민들에게 (게임, 텔레비전, 그리고 영화를 비롯한 미국 대중문화에 흉내 내고는 있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대통령의 눈’으로 대표되는) 시각의 군사적 확장을 형상화해 주며, 먼 거리에서 ‘적들’을 감시하고, 목표물을 설정하고 파괴하는 전지전능한 지정학적 시선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모든 곳을 감시함으로써 원격으로 선제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고, 드론을 통해 사람들을 죽일 수 있으며, 이른바 외과수술식 타격이라 불리는 다른 형태의 작전도 수행할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 이미지는 처벌받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는 미국 주권을 묘사한다.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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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기술(technology)은 단순한 도구적 개념을 넘어, 이미 삶의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 ‘상황실’ 안에서 타격을 가하는 행위, 그 장면이 전송되어 우리가 이를 목격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이미지가 유명해지는 현상조차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된다. 자본주의적 논리가 내재된 기술의 침투력은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것들을 절대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투명성’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깊은 연못이 맑아 보이는 착시적 효과에 불과한가? 기술과 자본이 구축한 질서는 실제를 반영하는가, 혹은 그것을 은폐하는 기제에 지나지 않는가?
이와 같은 의문을 던지는 몇몇 예술가들은 기술이 만들어낸 표면적인 안정에 균열을 가하며, 그 아래 감춰진 층위를 드러내는 전략을 모색한다. 표면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은 순간적인 파동을 일으키지만 곧 사라진다. 그러나 파동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거나 다수의 물방울이 동시에 떨어진다면, 그 패턴은 일시적 현상에 머물지 않고 구조적 균열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에 단편화된 진실의 조각을 수집하고 현실의 흐릿한 단면을 몽타주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들의 작업을 통해 기술과 자본이 형성한 질서를 재검토하고, 그 균열 속에서 드러나는 파동의 연속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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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권병준, 〈청주에서 키이우까지〉, 2022, 위치인식 헤드폰 10대, GPS 실시간 보정 베이스 스테이션, 가변크기.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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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권병준(Byungjun Kwon, 1971-)은 〈청주에서 키이우까지〉(2022)로 ‘전쟁의 소리’를 작품에 포함시킨다. 작가는 청주에서 수집한 도시의 소음과 미디어에서 수집한 소리를 매핑해 오디오 증강현실로 만드는데, 마치 전쟁 전의 평화로운 키이우의 도시 소리와 전쟁 중의 소리를 병치한 것처럼 들리게 된다. 헤드폰을 쓰고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인 미술관 야외 풍경을 거닐다보면, 사이렌 소리, 비행기 소리,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4) 이는 우리 일상에 내재한 재난의 가능성을 드러내며, 파괴의 공포와 트라우마가 어느 곳에나 존재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함이다.5)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전쟁의 소리는, '평화'란 상태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이었는지 상기시킨다. 특히, 이 소리가 실제 전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성된 소리라는 점은, 우리가 믿어온 현실의 감각마저도 조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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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베를린 도시 건축물에 남아있는 흔적. (출처: 작가 홈페이지) |
(도 3) 전혜주, 〈환각지〉, 2014, 3D 스캔, 3D 프린트(폴리락타이드), 폴리에스터 캐스팅, 레진. (출처: 작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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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전혜주(Hyejoo Jun, 1985-)는 베를린 도시 건축물에 2차 세계대전 때로 추정되는 전쟁의 남아있는 흔적들을 캐스팅한 〈환각지〉(2014)를 선보인다(도 2, 3). 이 작업은 사라진 신체에 대한 아픔을 느끼는 환각 증상(phantom limb)처럼, 총탄이 만들어 낸 빈 공간을 통해 무의식에 잠재된 아픔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6) 또한, 〈Body Check〉(2020)는 사람들의 몸으로 뚫고 들어오는 현대 신호들의 일방성, 직진성, 폭력성을 초음파 지향성 스피커를 사용해 소리로 구현한 작업으로, 작가는 실제로 초음파 장치가 군사적 용도나 군중을 통제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에 주목한다.7)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하고 활용하는 시스템, 과학기술, 미디어, 장치, 도구가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구조화한다.8) 모두가 이미 포착되어 있음을, 기술과 도구의 매커니즘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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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전혜주, 〈Body Check〉, 2020, 2채널 사운드, 초지향성 스피커, 모터, 레이저, 190×85×55cm. (출처: 금천예술공장) |
(도 3) 전혜주, 〈Body Check〉, 2020, 2채널 사운드, 초지향성 스피커, 모터, 레이저, 190×85×55cm. (출처: 금천예술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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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승(Jung Seung, 1976-)은 식물로부터 추출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의 주기, 조건, 상태 등 생명을 둘러싼 정보를 시각화한 로보틱스 설치 작업 〈Prometheus’s String〉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암매장지 주변에서 채집한 식물 데이터를 활용해 제작한 로봇 〈Prometheus’s String III〉(2019)과, 분단국가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DMZ 지역의 식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Prometheus’s String IV〉(2018) 등이 있다(도 4, 5). 비극적 역사의 흔적 속에서 새롭게 움튼 식물의 생체 데이터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국가적 폭력에 스러져간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위로하며, 그 터전 위에서 피어난 생명 자체를 조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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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정승, 〈프로메테우스의 끈 III〉 , 식물 재배기, 3D프린트(PLA) 조각, 로봇 움직임, LED 조명 장치, PC, 모니터, 가변크기. (출처: 작가 홈페이지) |
(도 5) 정승, 〈프로메테우스의 끈 IV〉 , 식물 재배기, 3D프린트(PLA) 조각, 로봇 움직임, LED 조명 장치, PC, 모니터, 가변크기. (출처: 작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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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전쟁과 내전의 후손이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며, 우리는 다시금 같은 비극을 마주한다. 존 다우어는 『전쟁의 문화: 미국과 일본의 선택적 기억, 집단적 망각』(2024)에서 “모든 현대 전쟁에서 교전 양측은 심리전을 수행하기 위해 온갖 선전물로 전황을 도배하기 때문에 진실은 감춰진다”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기술적 환경 속에서 우리의 인지 체계는 이미 과포화 상태에 이르러 무기력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병준, 전혜주, 정승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술과 자본, 그리고 전쟁과 폭력의 구조를 탐색하면서도, 공통적으로 기술 자체를 전유하고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권병준은 오디오 증강현실을 활용해 평화로운 공간 속에서 불안과 재난의 가능성을 불러내고, 전혜주는 건축물의 상흔과 군사적 음향 기술을 통해 역사와 기술의 폭력성을 체험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정승은 땅에 녹아든 폭력의 역사를 비인간 생명의 데이터로 변환해 삶의 신호를 포착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적 기술 체제가 만들어낸 매개와 도구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구조화하는 전략과 폭력을 드러내고 전복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을 재구성하는 방법론이자 저항의 매개체로 작동한다. 무기를 해체하고, 부품을 연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그들의 방식은 단순한 반격이 아니라 토대의 작동 방식의 반추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추적하고자 하는 실천이다. 투명하다는 믿음을 저버리고, 다가오는 슬픔을 맞이하자. 들려오는 전쟁의 파편들과, 그 위에서 살아갈 우리들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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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슈 토머스 페인, 『전쟁 게임: 9.11 이후의 밀리터리 비디오 게임』, 진달용 (역), 파주: 한울아카데미, 2020, p. 117.
2) 앞의 책, p. 178.
3) 앞의 책, p. 180.; Kennedy, "Seeing and Believing: On Photography and the War on Terror," Public Culture 24, no. 2 (2012): pp. 27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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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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