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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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오십 한번 째 뉴스레터] 웃어(도) 넘기지 않기: 엘레나 테자다-헤레라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웃어(도) 넘기지 않기: 엘레나 테자다-헤레라]
여성과 특정 인종에 대한 폭력, 경제적 폭력, 자연에 대한 폭력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얼굴을 띤다. 혹자가 폭력에 웃어넘기지 않고 분위기를 깨는 분노의 전복적 힘을 주장한다면, 페루 출신의 작가 엘레나 테자다-헤레라는 그러한 폭력에 웃음으로 응수한다. 거리로의 개입과 집단 창작을 통해 다함께 펼쳐지는 웃음의 장은 무해한 ‘웃어 넘기기’가 아닌, 일종의 저항의 무기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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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도) 넘기지 않기: 엘레나 테자다-헤레라
박예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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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출신의 여성 작가 엘레나 테자다-헤레라(Elena Tejada-Herrera)는 여성과 특정 인종에 대한 폭력, 경제적 폭력, 자연에 대한 폭력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전제 하에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그녀의 이러한 관심사는 90년대 후반 페루 독재 정권의 폭력성과 페루 미디어의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 미국에서 남미 출신 유색인종 여성 이민자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과정, 여성의 욕망에 대한 탐구, 자연에 대한 자본세(capitalocene)적 관점의 논평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삶을 살아가며 느낀 실존적 체득에서 출발한다.1)
테자다-헤레라는 몸을 길거리와 같은 공공 영역으로 개입시키거나 집단 창작을 통해 작업의 전 과정에 다양한 몸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비디오와 퍼포먼스, 설치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특히 그녀의 예술 실천은 여성의 몸을 예술의 매개로, 공공 영역을 예술의 장소로 삼았다는 점에서 1990년대 페루라는 시공간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2) 여성 예술가의 퍼포먼스는 당시 모더니즘 예술이 주류였던 남성 예술가 중심의 페루 미술계에서는 낯설고 새로운 예술 형식이었으며, 엄혹했던 당시 페루의 권위주의 사회정치적 환경에서 공공 장소를 점유하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용기와 예술가의 소명 의식을 요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3) 무엇보다도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1938-2024)의 독재 정권과 반정부 반군 ‘빛나는 길 (Sendero Luminoso, The Shining Path)’이 고문과 폭력을 자행하던 상황에서, 특히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투쟁과 저항의 장소로 의미화되고 있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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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na Tejada-Herrera, Bomba y la bataclana en la danza del vientre [Bomba and the Bataclana in the Belly Dance], 1999,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10 min. 8 se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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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무자비한 폭력과 차별에 그대로 응수하듯 작업 초기에 작가는 돌발적이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감행했다.5) 예컨대 비디오 작품 〈Recuerdo (추억)〉 (1998)은 작가가 밀봉한 검은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마치 시체가 안에 있는 듯 시작된다. 이윽고 작가는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어가며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는데, 이는 1992년 후지모리가 계엄령을 발표했던 당시 라 칸투타(La Cantuta) 대학교에 침입한 특수정보대 콜리나(Colina)가 학살했던 학생들의 이름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폭력을 마주하고 당시 페루 시민들이 감내해야 했던 침묵과 공포에는 슬픔과 괴기스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방식의 저항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테자다-헤레라의 〈Bomba y la bataclana en la danza del vientre (봄바와 바타클라나와 함께 하는 밸리 댄스)〉 (1999)의 과장과 유머는 오히려 독특한 것처럼 보인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한 떠돌이 노점상과 함께, 리마 중심부의 엘 아베르노(El Averno) 문화 센터 지하 공간에서 행인을 대상으로 밸리 댄스를 공연한다. 당시 페루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안데스에서 생계를 위해 리마로 이주해 온 다수의 노점상들은 원피스 속에 풍선을 달아 큰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여성처럼 꾸미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풍선을 나눠 주며, 사탕을 팔곤 했다. 작가는 사전 리서치 중 ‘봄바(Bomba)’라는 별명을 지닌 한 남성 노점상을 작품에 섭외하였다. 급박한 종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가운데, 봄바는 풍선으로 만든 과장된 가슴과 엉덩이를 단 채 거리의 여성으로 분하여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복장도착적 쾌락이나 트랜스젠더적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를 (평소에도) 춤추게 하는 것, 희화화된 여성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은 경제적 동기일 뿐이다. 한편 작가 또한 가난한 쇼걸 혹은 ‘바타클라나(Bataclana)’처럼 차려입고, 우스꽝스럽게 거대한 가슴 모양의 풍선을 단 채 배를 요동치며 밸리 댄스를 춘다. 퍼포먼스가 끝날 무렵 작가는 풍선으로 만든 가슴을 작게 잘라내고, 파란색의 가짜 피가 뿜어져 나오는 풍선 가슴에 깜짝 놀란 거리의 관람객들에게 하나씩 그 조각들을 나누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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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시작으로, 테자다-헤레라의 작품에는 세상의 모든 폭력과 부조리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웃음’의 뉘앙스가 드러난다. 유쾌하지만 다소 도발적인 초기 작업에서는 시니컬함이 조금이나마 묻어나지만, 작가의 최근 작업에서 웃음은 누군가를 풍자하거나 비웃기 위함이 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긴장을 최소화하고” 친근감을 형성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에서 웃음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13년도 작품 〈The Teasing Monkey Is Back: Interactive participative performance installation(장난꾸러기 원숭이가 돌아왔습니다: 인터랙티브 참여형 퍼포먼스 설치물)〉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맞추어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비디오 영상 설치 공간에서, 작가 본인이 여성 속옷을 입은 고릴라 탈을 쓰고 등장하는 퍼포먼스 설치 작품이다. 인간을 동물로, 여성의 성을 ‘고릴라’로 만드는 것은 가부장적 비유들로 넘치는 ‘킹콩(King Kong)’ 캐릭터에 대한 ‘퀸콩(Queen Kong)’의 유머러스한 화답이자, 게릴라 걸스와 같은 페미니즘 운동의 패러디, 그리고 인간 여성과 동물 여성 간의 유사성을 탐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웃음의 윤리를 잃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이 태도는 성숙한 자기애로 반짝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웃음이 몸을 매개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바나나를 나눠 주고, 포옹을 하고, 장난을 걸면서 관람객들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투입시킨다. 작가는 고릴라가 된 작가 본인과 스크린에 비친 관람객 자신의 왜곡된 상과 상호작용하면서 퀴어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를 소망하였다.
프로이트는 농담, 희극, 유머로 웃음의 기제를 구분했다. 농담이 무언가를 억압하고 억제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행위라면, 유머는 분노와 슬픔과 같은 감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식의 구분을 가져온다면, 테자다-헤레라의 작업은 권위주의 정부의 폭력과 경제적 압제를 마주하는 시민이 오랫동안 저항과 분노의 힘을 갖도록 하는 유머를 동력으로 삼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해지지 않는 폭력에 뭉근한 분노로 맞서는 것은 중요하다. 페루의 격변의 현대사를 겪어낸 작가가 주지하듯, 폭력의 근본적인 구조가 비슷하다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디서든 다른 이름으로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오르는 분노의 불꽃에 아름다운 삶이 산화되지 않도록,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저항하는 것. 그것이 오래도록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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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페루의 현대사는 굴곡의 연속이었다. 1968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군사독재정권을 겪은 후 1980년대의 짧은 민주화 시기를 거쳐 1990년 당선된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은 2001년까지 독재 정권을 유지하면서 각종 부정 부패를 저질렀다. 한편 심각한 사회 불안과 초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 심화로 인해 1980년부터 정부와 좌익 게릴라 간의 내전이 발발하여 2000년까지 지속되면서 내정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3) 작가는 중산층이자 메스티자(Mestiza)로서 자신이 정치적 부조리를 고발해도 암살당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 특권을 이용하여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Joel Yoss, Personal conversation with the artist. Miami, June 2016, ELENA TEJADA-HERRERA, VIDEOS FROM THIS WOMAN: Performance Documentation 1997-2010, ed. Florencia Portocarrero, (Proyecto Amil: 2017), 13.
4) 일례로, 아프로-페루 페미니스트 활동가 마리아 엘레나 모야노 델가도 (María Elena Moyano Delgado, 1958-1992)가 빛나는 길에 의해 암살된 후 그 시신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당하는 잔혹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이끌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타개하고자 했던 후지모리 정부와 좌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빛나는 길 모두를 비판했던 인물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Mar%C3%ADa_Elena_Moyano.
5) 또다른 예로, 작가의 첫 번째 비디오 작품인 〈Señorita de buena presencia buscando empleo (미모의 여성이 구인함)〉(1997)에서는 작가가 음부와 엉덩이를 제외한 온몸을 원고 요청 광고지로 덮은 뒤, 리마에서 개최되어 세계적인 비평가들과 큐레이터들이 참석한 제1회 이베로-아메리칸 비엔날레(1997) 라운드테이블에 난입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녀가 스크랩하여 몸에 두른 신문에는 각각 ‘일반적인 일자리,’ ‘미모의 여성 구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페루에서 ‘미모의’ 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백인을 의미하며 ‘일반적인 일자리’란 매춘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 퍼포먼스로 작가는 페루 노동시장과 미술계에 은폐된 채 작동하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고발했다. Armando Andrade Tudela, “STAR WITHOUT ORIGIN NOTES ON THE FIRST THREE PERFORMANCES OF ELENA TEJADA-HERRERA,” ELENA TEJADA-HERRERA, VIDEOS FROM THIS WOMAN: Performance Documentation 1997-2010, ed. Florencia Portocarrero, (Proyecto Amil: 2017),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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