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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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마흔일곱 번째 뉴스레터] 흔적과 몰입: 기술, 신체, 환경의 삼중주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흔적과 몰입: 기술, 신체, 환경의 삼중주]
동시대 작품들은 신체적 상호작용이 단순한 미학적 요소를 넘어, 예술의 의미와 구조를 재구성하는 주요 메커니즘임을 보여준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감각적 몰입, 토마스 사라세노의 공간적 탐구, 그리고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기술적 상호작용은 동시대 미술에서 관객의 신체는 작품의 본질적 요소로 통합되며, 새로운 미술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예술이 끝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단순한 표현을 넘어, 미래의 문화적, 철학적, 그리고 생태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지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하는 다양한 여정들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그 가능성을 예고하는 끝없는 탐구의 과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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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과 몰입: 기술, 신체, 환경의 삼중주
김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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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lieve that one of the major responsibilities of artists — and the idea that artists have responsibilities may come as a surprise to some — is to help people not only get to know and understand something with their minds but also to feel it emotionally and physically.”1)
- Ólafur Elía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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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로버트 모리스, 《Bodyspacemotionthings》 전시 내부 모습, 1971. ⓒTate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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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신체의 경험은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신체는 모더니즘 이후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예술적 실천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신체적 참여는 예술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설계되기 시작했고, 이는 미술관 경험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1971년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전시 《Bodyspacemotionthings》는 그가 뉴욕에서 여러 예술가들과의 협업 프로젝트 저드슨 댄스 시어터와의 협업 이후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신체, 공간, 시간, 사물의 상호작용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도 1). 당시 모리스의 전시에 방문한 작품의 일부가 되어 관람객은 목재 경사로를 오르내리거나, 균형을 잡기 어려운 플랫폼 위를 걷고, 고무 튜브를 밀거나 당기며 작품을 탐구했다. 이 작업은 관람객이 자신의 움직임과 신체적 감각을 통해 작품과 직접적으로 교감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작품을 단순히 ‘보는 대상’에서 ‘체험하는 과정’으로 전환시킨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관람객이 경사로를 이동하며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신체는 단순히 공간의 일부가 아니라 작품과의 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된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전통적 기능을 흔드는 동시에,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신체와 공간이 결합된 미술 경험의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제시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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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도날드 저드, 〈무제 Untitled〉, 1970, Stainless steel and blue plexiglass 10 units, each 9 × 40 × 31 inches. ⓒdonaldjudd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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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는 기하학적 형태와 공간적 설계를 통해 관객의 신체와 작품의 관계를 탐구했다. 그의 대표작 <무제 Untitled>(1970)는 벽에 정렬된 금속 상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상자 사이의 간격은 단순한 비례적 배치를 넘어 관람객의 신체적 참여를 유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도 2). 저드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머리를 숙이거나 특정 각도로 몸을 움직이며 상자 사이를 들여다보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작품의 물리적 구조와 공간적 특성을 새롭게 인식했다. 저드의 작품에서 신체와 공간의 상호작용은 작품 그 자체의 의미로 확장되며, 관람객의 경험이 작품의 본질적 일부로 통합된다. 이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미술 작품이 단순히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체험되는’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체적 상호작용은 기술과 융합되면서 더 다채롭고 몰입적인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관객은 더 이상 작품의 관찰자가 아니라, 기술적 매체를 통해 작품의 일부분으로 통합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동시대 미술이 신체적 경험을 확장하는 동시에, 사회적, 기술적, 환경적 담론을 탐구하는 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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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올라퍼 엘리아슨, <당신의 눈먼 승객 Your Blind Passenger>, 2010 ⓒÓlafur Elía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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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엘리아슨(Ólafur Elíasson)의 <당신의 눈먼 승객 Your Blind Passenger>(2010)은 관객의 신체적 경험을 통해 감각과 환경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도 3). 두꺼운 안개로 가득 찬 터널은 시각적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 촉각, 후각, 공간적 직관 등 비시각적 감각을 통해 주변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며, 관객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자각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신체는 더 이상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며 의미를 생성하는 주체로 자리 잡는다. 특히, 팬데믹 이후 신체와 환경의 단절을 경험한 현대인들에게 이 작업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생태적, 철학적, 존재론적 차원에서 재고하게 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내 신체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작용하며, 의미를 형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엘리아슨의 작업은 감각적 몰입을 넘어, 예술이 현대 사회의 생태적, 윤리적 담론을 탐구하는 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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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토마스 사라세노, 〈구름 도시 Cloud Cities>, 2011-2012 ⓒstudiotomassarace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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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작품을 통해 건축, 예술, 그리고 과학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아르헨티나 출신 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의 <구름 도시 Cloud Cities>(2011-2012)는 신체적 경험과 중력의 탐구를 결합한 설치 작업이다. 이 작품은 투명한 구체들로 이루어진 공중 구조물로, 관객은 그 내부를 이동하며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균형과 중력을 체험한다. 구체들 사이를 이동할 때 관객은 자신과 주변 공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경험한다. 특히, 작품은 관객의 이동이 다른 관객의 경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되어, 개인적인 경험과 집단적인 경험의 경계를 허문다. 관객이 구체 안에서 중력의 변화를 느끼며 자신의 신체적 위치를 재조정할 때, 이는 단순히 조형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생태적, 공동체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라세노는 이를 통해 인간과 환경, 그리고 신체와 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새로운 차원에서 탐구한다. 이 작업은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경험이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통해 공동체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은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이 다른 관객의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체험하며, 공간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구성하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히 신체적 탐구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나는 이 공간에서 타인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작품은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 생태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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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라파엘 로자노-헤머, <대기 기억 Atmospheric Memory>, 2019 ⓒaesthetica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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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대기 기억 Atmospheric Memory> (2019)은 대화형 작품의 형태로 대기의 진동을 방문객이 보고, 듣고, 심지어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변환시킨다. 관객의 목소리를 공기 입자의 시각적 움직임으로 변환하는 기술 기반 설치 작품으로 관객이 특정 문장을 발화하면, 그 소리가 디지털 알고리즘을 통해 공기 중 입자의 움직임으로 재현되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각적 패턴을 생성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의 신체적 참여는 단순히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을 넘어, 작품의 형태와 구조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한 관객의 목소리가 공기 입자 속에서 빛과 소리로 변환될 때, 이는 물리적 경험을 넘어 감정적이고 내러티브적인 요소를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자신의 발화와 움직임이 물리적 공간에 흔적으로 남는 것을 경험하며, 기술과 신체가 예술적 경험 속에서 통합되는 방식을 체험한다. 이처럼 기술적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시각적 형태로 변환되며, 개인의 흔적이 물리적 공간에 남는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닌,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기술적으로 매개된 기억의 흔적으로 재인식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기술은 관객과 작품 사이의 단순한 도구적 역할을 넘어, 기억과 현재를 동시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철학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남기는 흔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며, 신체와 기술의 상호작용을 존재론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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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작품들은 신체적 상호작용이 단순한 미학적 요소를 넘어, 예술의 의미와 구조를 재구성하는 주요 메커니즘임을 보여준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감각적 몰입, 토마스 사라세노의 공간적 탐구, 그리고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기술적 상호작용은 동시대 미술에서 관객의 신체는 작품의 본질적 요소로 통합되며, 새로운 미술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들이 동시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신체적 참여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의 경험이 사회적, 철학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과 연결되도록 한다는 점에 의의를 지닌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흔적, 역할, 그리고 감각을 재발견하며, 이는 동시대 미술이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사회적, 기술적, 환경적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체는 이제 단순한 경험의 도구가 아닌, 미술적 의미와 사회적 담론을 생성하는 주체로 재구성되고 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작품과 신체의 탐구는 관객의 경험의 도구를 넘어,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주체로 자리 잡게 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을 넘어, 관객과 세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본질적 질문에 응답하며, 기술과 신체, 환경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동시대 미술은 이제 단순히 해석의 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관객이 스스로의 존재와 세계를 재정의하도록 초대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이는 예술이 끝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단순한 표현을 넘어, 미래의 문화적, 철학적, 그리고 생태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지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같은 여정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그 가능성을 예고하는 끝없는 탐구의 과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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