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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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마흔다섯 번째 뉴스레터] 가련한 몸, 가여운 것들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마흔다섯 번째 레터는 한지형 작가의 신작들로 구성된 개인전 《사치스런 뼈 Lavish Bone》(2024)에 주목하여 전개된다. 이번 전시에서 한지형은 자신이 바라보는 2100년의 미래세계를 다양한 생명들의 원형을 변형시켜 혼종적 존재로 만들어 표현함으로써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공생 가능성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모색의 현장을 보여준다.
[가련한 몸, 가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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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몸이란 무엇인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은 다른 종과 인간을 구분하는 근거이자 세계를 지각하는 매개체라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이 진리이던 시대에 몸은 영혼의 거처(껍데기)에 불과했으나, 점차 시간이 흘러 인간의 몸은 철학과 사상 등 한 사회가 추구하는 사회, 문화적 가치에 영향을 받아 미술에서도 여러 가지 주제로 부상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몸을 다룬 현대미술은 몸에 관한 ‘일반’ 문화의 태도 및 가치와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뜻이며, 그에 따른 세계 속의 ‘일반’으로 인정되는 것과 대항되는 소외되고 타자화되어 온 주체들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쟁점이 되는 요소인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를 세계의 일부로서 몸, 즉 그것이 가진 ‘생명력’이 원천이라고 본다. 권력 안에서 생명력은 유용한 것이며 예속시키고 싶은 것이다. 때문에 이 둘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몸은 다양한 권력 형태에 따라 억압당하고 과장되거나 은폐되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몸이라는 주제는 현대 사회에서 열렬한 문화 전쟁이 벌어지는 첨예한 경합의 장소이며, 이 시대의 가장 정치적인 영역 중 하나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가장 유효한 인간의 몸에 관한 얘기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 이상 새로운 것이 있긴 할까? 있더라도 유의미한 담론과 미감을 담을 수 있을까? 필자는 이러한 의구심을 최근 제이슨함(jason haam) 갤러리에서 열린 한지형 작가의 개인전,《사치스런 뼈 Lavish Bone》( 2024년 11월 9일 ~ 12월 21일)를 본 후에야 해소하게 된다. 작가 한지형의 작품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그는 미래와 신체라는 키워드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시사한다. 1) 필자가 흥미로웠던 지점은 그가 인간의 ‘신체’를 다루긴 하지만 그 원형을 전복시켜 ‘미래’ 세계의 인간사회 속 신체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탈바꿈해 기존의 예측 가능한 미래를 엎어버린다는 것이다. 한지형이 2100년을 상상하며 구축한 미래는 인간과 동물, 기계들이 공존하며 이들의 신체는 모두 선택의 영역이며 변형이 원형보다 자연스러운, '사치의 도구'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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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한지형, <두 번째 삶 You should live twice>, Acrylic on canvas, 120 X 160cm, 2024, 출처: 제이슨함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
(도 2) 한지형, <경외하며 일어서다 Stand Amazed>, Acrylic on canvas, 162 X 130cm, 2024, 출처: 제이슨함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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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실에서 보이는 그의 작품, <두 번째 삶 You should live twice>과 <경외하며 일어서다 Stand Amazed> 속에 나타나는 동물 혹은 캐릭터의 외형을 한 인간과 로봇 강아지가 바로 미래의 ‘성형’으로서의 도구이자 수단이며, 이것은 새로운 사회의 권력과 자본에서 생성될 수 있는 소비사회의 한 형태를 시사한다.(도 1, 2) 아마도 이러한 미래 사태를 긍정이냐 부정이냐 논하는 것이 작가의 취지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픽션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도 여전히 권력이 신체에 관여하는 침투성이다. 작가가 구현한 변종 형태의 몸은 ‘시선의 권력’ 아래에서 평가 내려진 매력적인 신체의 원형을 지워냈지만 여전히 집단적 위계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시선의 권력이 재발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이는 현실의 버츄얼 아바타가 그러하듯 멀지 않은 미래에 누구나 자신이 꿈꾸던 환상의 조건으로 본인을 내비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상업과 자본이 존재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본인이 선택한 정체성이 진정 본인의 것인가 하는 모순과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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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한지형, <침대 위의 점심식사 The Luncheon on the bed>, Acrylic on canvas, 120 X 178cm, 2024, 출처: 제이슨함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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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러한 쟁점을 이어서 멸망한 미래 사회에서 발생되는 혼란, 긴장, 생존과 관련한 메시지로 전한다. <침대 위의 점심식사 The Luncheon on the bed>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원형의 얼굴을 동물로 개조한 인간과 인간의 외형을 갈망하여 인간답게 치장하는 사이보그를 보여준다.(도 3) 이는 도저히 멸망한 사회라고 볼 수 없게끔 사교모임을 위해 준비하는 10대 소녀들이라도 보여주듯 유쾌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비인간과 인간의 공존이 확립된 사회 속에서는 제각각의 존재가 가지고자 하는 정체성을 쫓는 것이 헛된 수고가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해나가는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자아’를 형성하고 확립하는 것에 관해 본질적으로 더욱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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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한지형, <이제 곧 닥쳐올 사태에 대한 슬픈 예감>, Acrylic on canvas, 190 X 280cm, 2024, 출처: 제이슨함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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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형이 야기하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는 <이제 곧 닥쳐올 사태에 대한 슬픈 예감>에서 마무리된다.(도 4) 검정색 톤의 음울한 배경 안에 변종된 신체를 가진 존재들이 모여서 집중하는 것은 둥지 속의 알이다. 알은 곧 태어날 생명이기도 하며 순수성을 대변하는 생명의 진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생명의 원천(알)이 곧 주위의 변종된 존재들처럼 그 순수성을 잃고 원형의 조건을 바꾸어 나갈 것을 예견하게 된다. 즉 미래 사회에서는 ‘적응’을 위한 ‘변화’만이 생존할 수 있음을, 그만큼 순수성이 지켜지기 힘든 것으로 내몰린다. 적응과 변화는 가변하는 세계 속에서 필수적이기에 동시대에서도 필수적인 것이고 이에 따라 끊임없이 인간은 자신의 이미지를 차용할 뿐만 아니라 자아 자체를 차용하여 재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 곧 닥쳐올 사태에 대한 슬픈 예감’은 먼 미래사회가 아닌 현 시대의 인류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미술에서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담론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미술에서 신체에 대한 표현은 각 시대성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 하여왔다는 것이고 따라서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 적절한 신체의 패러다임을 파악하는 것이 긴요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몇 가지 몸에 관한 관점을 예시로 들자면, 먼저 불완전하고 유한한 몸의 조건들을 드러내는 물질적인 존재로서의 몸, 그리고 젠더·인종·민족·계급에 근거한 정체성의 기표로서의 몸, 또는 생명공학·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공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몸 등이 있다. 그만큼 상상이자 곧 현실이 될 가까운 미래의 새로운 ‘신체, 몸’은 무궁무진하여 가지각색으로 표출될 수 있다. 한지형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기존의 AI와 인간,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증강현실 속 인간과 같은 상상이 오히려 평범한 무엇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지형이 구축한 미래에 뼈는 사치일 뿐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공생은 이미 당연한 것이며 이것들은 곧 뼈 위에 여러 외피들로 외형을 갈아 끼울 것이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자아를 찾아 나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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