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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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마흔 한 번째 뉴스레터] 흩어지는 감각을 영속하는 법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이러한 틈의 미학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우리 삶 속에서의 틈, 즉 여백의 가치와도 연결된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틈을 무시하거나 채워야 할 결핍으로 인식하지만, 이안 하의 작업은 그 틈이 지닌 잠재적인 의미와 힘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 속에서 틈은 결코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틈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림자와 빛이 서로 얽히고 중첩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사이에 포개진 짙은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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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가 작고 마른 성질의 재료이기에 그 자체로 쌓아 올리면 무너지기 쉽다. 모래성을 만드는 도중에 우리는 모래가 주는 신호를 무시하고 그저 쌓아 올린다. 그렇게 계속해서 쌓아 올리게 되면 결국 완전한 모래성을 쌓지 못하고 금세 무너지고 만다.”
– 류정하의 작가노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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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하의 작업은 뼈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그의 선천적인 기형과 연관이 있다. 뼈는 신체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며 각 부분의 연결과 조립을 통해 운동한다. 류정하에게 뼈와 뼈 사이의 통증은 통(痛)감과 더불어 뼈에 대한 경직되고 분절된 감각(sensation)을 야기한다. 그의 작품에서 감각은 신체를 동반하는 것이다. 감각은 곧 정동(affect)을 현재의 표면 위로 끄집어내어 과거의 표상을 환기시키며, 미래적 상황에도 영향을 끼친다. 감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피어오른 작고 마른 불안감은 계속해서 쌓이고 또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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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류정하, <생명이 없는 뼈는 불안함의 생명력을>, 2022, 아사천 뒷면에 목탄, 콘테, 270 × 1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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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없는 뼈는 불안함의 생명력을>(2022)에서 선적인 형상과 통로를 연상시키는 선형적인 이미지는 류정하가 신체 안팎의 관계에 집중하며, 신체를 지각과의 상호적인 통로로 인식했음을 암시한다(도 1). 경직되고 분절된 감각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상승과 하강의 운동을 포괄하는 신체 안과 밖의 역동적인 반응이다. 정동은 통로를 타고 오르내리며 흔적을 남긴다. 말랑한 석고붕대는 바싹 굳어지며 굴곡진 뼈 덩어리를 형성한다. 이는 경직된 신체이며, 감각의 블록(un bloc de sensations)이다.
한시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감각은 어떻게 영속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굴레에 의해>(2021)는 흙을 다듬고 구워 쌓아 놓은 형태이다(도 2). 굴곡진 뼈 블록들은 수직적이며, 철봉은 그 중심을 관통한다. 그리고 그 안팎으로 움직이는 감각은 분절적이다. 주재료인 도자 흙은 또한 감각 속으로, 또한 정동으로 옮겨간다.1) 이 순간 물질적 재료로서 흙은 감각과 불가분한 상태가 된다. 감각의 블록을 추출하여 세워놓는 것, 이것이 류정하가 감각을 영속시키는 방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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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류정하, <보이지 않는 굴레에 의해>, 2021, 세라믹, 철근, 130 x 70 x 18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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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류정하의 작업은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감각으로 확장한다. 그는 “사물에 각각의 마디가 연결되어 기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2) 이는 그가 신체를 인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에게 사물은 정동이 내재되어 있고, 또한 “저마다의 생명의 기억을 안고 있는” 것이다.3) <Walking stick>(2022)은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는 작업이다(도 3). 분절된 마디들은 사물에 대한 기억을 표상하는 오브제와, 이에 상응하는 뼈마디로 이뤄져 있다. ‘walking stick’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류정하에게 사물과 마주하는 것은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다. 가령 우산을 들거나 플러그를 꽂는 등의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우산을 촉각적으로 지각할 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 ‘느낀’다. 손끝은 사물과 만나 감각하고 교섭하며 변용된다. 그에게 사물은 정동이 내재된 것으로, 사물을 만지는 행위는 즉 신체와 사물의 ‘마주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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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류정하, <Walking stick>, 2022, 혼합재료,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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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서 류정하가 선택한 재료들은 유의미하다. 그의 감각은 신체와 뼈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한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점에서 분절적이며 모래알처럼 낱개의 것이다. 그러나 감각은 또한 현재적이면서 과거의 것을 상기시키고, 미래에 영향을 주는 영속적인 반응이다. 낱낱의 석고 가루와 흙가루는 수분을 만나 끈적한 덩어리를 형성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류정하는 그렇게 형성된 감각의 블록들을 겹쳐 쌓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감각이라는 모래알을 빚고 쌓아 완전한 모래성을 간직하려는 것이며, 곧 감각의 분자적 힘을 포획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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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뢰즈는 예술 작품에 있어 감각적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감각은 재료 자체의 지각체 또는 정동이다. 즉 유화 기름의 웃음이요, 테라코타의 몸짓이요, 금속의 솟아오름이요, 로마네스크 석재의 웅크림이요, 고딕 석재의 상승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정임·윤정임 역, 현대미학사, 1999, 156.
2) “사물 자체에서도 우산 살, 손잡이 등 분리된 것들이 연결되어 기능한다는 점에서 뼈들이 조립되어 기능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작가와의 인터뷰, 2023년 9월 1일.
3)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뼈를 남기고 그들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저마다의 생명의 기억을 안고 있다.” 류정하의 작가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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