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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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마흔 번째 뉴스레터] 그림자 속에도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이러한 틈의 미학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우리 삶 속에서의 틈, 즉 여백의 가치와도 연결된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틈을 무시하거나 채워야 할 결핍으로 인식하지만, 이안 하의 작업은 그 틈이 지닌 잠재적인 의미와 힘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 속에서 틈은 결코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틈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림자와 빛이 서로 얽히고 중첩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사이에 포개진 짙은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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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에서 화장실 청소하는 일을 한다. 그의 하루는 간결하다. 새벽에 일어나 식물에 물을 주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신 뒤,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1960-70년대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면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을 즐기고,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주말은 주말대로 패턴화된 일정이 반복적으로 흘러간다. 동네 빨래방에 들러 세탁을 하고, 사진관에 들러 일주일간 찍은 사진의 필름을 맡긴 후, 서점에 들러 그다음 주에 읽을 책을 한 권 구매한다. 저녁엔 단골 선술집으로 향하는데, 그곳 주인은 나이 든 주정뱅이들을 기꺼이 상대해주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만난 주인의 전남편은 자신이 말기암 환자라며 히라야마에게 그녀를 부탁한다. 히라야마는 자신은 단골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내심 싫지는 않은 듯 캔맥주를 나눈다. 이윽고 전남편은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히라야마는 그의 말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림자를 겹쳐 보인다. 전남편은 두 개의 그림자가 겹쳐도 더 짙어지는 것 같지는 않는다고 말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분명 더 진해졌다는 것이다. 히라야마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분명 어떤 물질의 실존과 그 실존에 깃든 서사, 의미를 대변한다는 것을. 그러므로 포개진 그림자는 실제 눈으로 보이는 것 자체와는 상관없이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2.
그림자란 빛이 닿지 못한 부분에 생기는 어두운 음영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림자는 항상 빛의 반대편에 나타나며, 자연스럽게 빛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며,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함께 사라진다. 빛과 그림자는 지극히 상반되는 동시에 상존하는 관계이다.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쪽도 따라서 자취를 감춰 버린다. 요컨대 이들은 함께 존재해야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림자들이 겹치고 포개졌을 때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의 공간 또한 더더욱 진하며 빛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틈새의 흔적과 그 짙음을 목도하게 해주는 행위는 이안 하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3.
그의 작품에는 지속적으로 ‘틈의 공간’들이 확인된다. 이를테면 <can’t go back> (2023)에서는 자전거 앞바퀴와 바큇살 사이로 비치는 노을이 포착된다(도 1). 이순간 자전거 바큇살은 살 자체가 아니라 살 사이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요컨대 바큇살이라는 물리적 존재는 곧 보이지 않는 비물리적 여백을 보다 또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다.1) 바큇살에 이어 분절되어 있는 저너머의 풍경이 서로 완전히 연결되어 있지 않고 일부분 비연속적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조각남에 따라 생겨난 노을의 균열은 작가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 그 과정에서 겹치고 겹친 자전거 바퀴, 바큇살, 그리고 풍경 사이로 드러나는 세상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로 거듭나는 데 성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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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이안 하, <can't go back>, 2023, 106 × 106cm, 사진 : Ben Salesse, 작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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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Lea> (2023)는 뜯어진 철조망을 화면 전체에 활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생긴 틈새의 공간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마주시킨다(도 2). 얼기설기 얽힌 철조망은 시선을 투과시켜 경계 저편을 볼 수 있게 하며 월경(越境)의 욕망을 부추긴다. 특히 좌측에 크게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은 저너머 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처럼 제시된다는 점에서 경계 넘어가기에 대한 의지를 한층 강화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공간들을 구분하는 방해물들은 두 영역 간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보다는 장애물 너머로 보이는 소박하며 일상적인 풍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겹쳐진 그림자와 그림자의 틈 사이로 보이는 포개진 빛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아주 작은 공간들, 비어있는 줄 알았던 그곳,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철조망을 넘어 앞서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틈의 존재와 틈을 보고 있는 자신뿐이다. 따라서 빛이 중첩되는 순간 더 진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틈이 주는 짙음을 향유할지 결정하는 것은 곧 우리 스스로의 믿음의 문제일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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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이안 하, <Lea>, 2023, 177.8 × 122 cm / top 20 × 27cm, 사진 : Fragment Gallery, New York, 작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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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편 이안 하의 작업 곳곳에 드러나는 또다른 틈의 흔적은 바로 판화의 존재다. 판화는 말 그대로 평평한 면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틈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르로, 그 안에 담긴 깊이와 공간을 담아낸다. 판화 작업은 물질을 제거하는 행위로 틈을 형성하고, 그 틈은 다시금 잉크를 채워 표현된다. 이는 단순히 깎인 흔적이 아니라, 사라짐과 채워짐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틈은 표면적으로는 결핍이나 부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속에 담긴 공간과 서사를 시각화하여 우리에게 일종의 '존재의 흔적'을 드러낸다.
그의 판화 작업에서 이러한 '틈'은 단순한 공간적 개념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그의 <blue chamber II> (2024)는 일차적으로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을 표현하는 동시에, 작품의 가운데 부분에는 베란다에 살짝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경치의 판화가 찍혀 있다(도 3).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 상징되곤 하는 바다 중간에 박혀 있는 친밀한 내부 공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과 멈춤, 개방과 차단 사이의 대조적인 순간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판화의 틈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순간에 존재했던 모든 감정과 서사를 담아내는 장치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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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이안 하, <blue chamber ll>, 2024, 52 × 52 inches, 사진 : A-Lounge Gallery, Seoul, 작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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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러한 틈의 미학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우리 삶 속에서의 틈, 즉 여백의 가치와도 연결된다.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틈을 무시하거나 채워야 할 결핍으로 인식하지만, 이안 하의 작업은 그 틈이 지닌 잠재적인 의미와 힘을 상기시킨다. 그의 작품 속에서 틈은 결코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틈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림자와 빛이 서로 얽히고 중첩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사이에 포개진 짙은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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