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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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서른 아홉 번째 뉴스레터] Yellow Festival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레만의 작품 속에서 여러 도상들은 꾸밈없는 순수한 솔직함을 품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관습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고 과감하게 현실적인 상상력과 주장을 펼쳐 나가는
레만의 작품 속에는 노란 폭죽을 바탕으로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해 쉽게 꺼지지 않는 불꽃을 노래하며 잔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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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판) 데이비드 레만(David Lehmann), <쇼 다운 Show Down〉, 2023~2024, 40 × 50cm,
ⓒHORIE ART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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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색감과 유동적인 붓놀림으로 내용이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독일 표현주의 혹은 앵포르멜을 연상시키며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가 있다. 관습적으로 이어져 온 동화 속 환상과 상상력을 등지고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과 현실을 꾸밈없이 토로해 내는 데이비드 레만(David Lehmann, 1987~)은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형상화하며 불편하고도 담백한 내러티브가 담긴 회화 작업을 진행시켜 나간다.
레만의 심오하고도 과감한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드는 감정은 낯섦일 것이다. 어쩌면 거부하고 싶을 만큼 복잡한 감정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낯설고 복잡한 첫인상을 뒤로한 채 레만의 작품은 호기심을 넘어 캔버스의 넓은 단면에 담긴 오브제들을 하나씩 분석하고 관찰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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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데이비드 레만(David Lehmann), 〈하프 타임 Halbzeit〉, 2019, 220 × 540 cm,
ⓒCHOI&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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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레만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 집중해 인간의 순수한 내면을 작품에 자연스레 흡수시켜 철학, 신화, 문학 등 작품을 한 가지 내러티브로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독일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풍자하거나 인간 본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5미터가 넘는 레만의 대형 작품 <하프 타임 Halbzeit>(2019)에서 가장 왼편에 자리 잡은 히틀러 모습을 한 극우파 인물이 탐욕스럽게 소시지를 구워 먹고 있다(도 1).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가득한 소시지를 먹고 있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병든것 같은 빈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와 더불어 창문을 통해 보이는 여인의 나체와 정체 모를 음료를 두고 구토하고 있는 신원이 불분명한 인간의 모습은 작품 속 내러티브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시선을 옮겨 오른쪽 화폭에는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배지를 가슴에 단 남성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한 채 귀족의 옷을 입고 나치 손동작을 한 남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작품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노란 물체와 함께 마치 외계 생명 혹은 인간의 실험 현장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 상황이 묘사되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일어나는 포퓰리즘(populism)이나 극우 사상에 대항하여 오늘날 사회적인 현상에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데이비드 레만의 주장이 담겨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을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터치, 그리고 평면적인 인간의 형상들로 당시 상황과 감정을 표현했다면, 데이비드 레만은 동시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 현상을 자유롭게 풀어낸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요소는 ‘노란색’이다. 데이비드 레만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노란 색감은 레만 작품의 바탕이 시작을 나타낸다. 빛으로 시작해 빛으로 삶이 끝난다는 고찰에서 비롯된 레만의 노란색은 작품에서 삶과 생명력을 나타내는 색감으로 작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란색으로 바탕색을 칠한 뒤 여러 층의 물감이 채색되면서 노란색은 가려지지만 노란 색감을 바탕으로 여러 색을 입혀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생명력을 바탕에 두고 그는 다양한 색을 뽑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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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데이비드 레만(David Lehmann), <성 Sexuz〉, 2024, 200 × 160 cm,
ⓒHORIE ART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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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레만의 최신작 <성 Sexuz>(2024)에서도 유연하게 캔버스를 노니는 노란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도 2). 그러나 작품의 제목이 아름다운 남녀의 성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캔버스에는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오브제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이 같은 도상은 사랑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단상으로 읽힌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순수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형상과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며 흐릿하게 허공을 떠다니는 배경을 뒤로한 채 이질감이 느껴지는 날카로운 무기와 알 수 없는 이미지, 그리고 가운데에 위치한 새들의 존재를 통해 사랑으로 겪게 되는 인간의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사랑으로 발현되는 설렘, 기쁨, 슬픔, 분노, 환희, 집착, 열정, 즐거움과 같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섬세한 감정들이 여러 오브제와 추상적인 이미지, 거칠고 부드러운 물감의 표현, 그리고 색감으로 구현된 것이다.
삶의 존재 의미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 사랑이라는 요소가 우리에게 가끔 물음표를 던지는 것처럼 레만의 작품은 인간의 숨겨진 내면 가운데 허공을 헤매며 어둡고 캄캄한 무(無)의 영역에서 형체 없이 떠다니는 복잡한 공상에 빠진 인간의 솔직한 본능과 내면 감정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이같은 모습은 레만이 지닌 사랑에 대한 단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동화나 신화의 이야기에서 종종 메신저의 역할로 등장한 새의 존재는 레만의 작품 속에서 억압되어 정체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어쩌면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여러 가지 복잡한 공상들로 난무하여 억압되어 버린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작품 속 비밀을 열어주는 단초와도 같은 열쇠(Key)는 바로 솔직함이다. 솔직함은 가끔 인간에게 용기를 쥐어주는 열쇠와도 같다. 노란색을 생명력으로 구사한 레만의 작품 속에는 솔직함이라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이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력을 띄고 있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들로 억압된 감정을 뚫고 나오는 솔직함이라는 과정 자체도 역시나 사랑의 또 다른 단면이자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된다. 레만의 작품은 솔직함이라는 열쇠를 쥔 채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향한 여정을 보여주며 사랑에 대해 모두가 지닌 원초적인 감정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어부와 그의 영혼 The Fisherman And His Soul>(2024)에서도 마찬가지로 인어공주를 우리가 아는 동화 속 인어공주가 아닌 실제 인어 여인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레만의 작품 속에서 여러 도상들은 꾸밈없는 순수한 솔직함을 품은 채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관습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고 과감하게 현실적인 상상력과 주장을 펼쳐 나가는 레만의 작품 속에는 노란 폭죽을 바탕으로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해 쉽게 꺼지지 않는 불꽃을 노래하며 잔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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