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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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일흔네 번째 뉴스레터] 계획이 닿지 못한 자리에서: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계획이 닿지 못한 자리에서: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는 싱가포르에 대해 "혼돈조차 기획된 혼돈"이라 했지만,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가 드러낸 것은 그 기획이 완전히 포섭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식민 통치자의 이름이 도시의 브랜드로 살아남듯, 멈춰버린 인터넷 카페와 소진된 자유, 그리고 도시의 표면이 만들어낸 리듬 또한 그 자리에 남는다. 싱가포르가 과거의 흔적 위에 다른 기능을 얹어 가며 도시 계획을 전개한 것처럼, 이번 비엔날레도 형식의 한계를 멀끔히 해소하는 대신 그것을 도시의 실제 리듬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도시'는 사실 지워지지 않은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 전시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들, 의도가 닿지 못한 자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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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닿지 못한 자리에서: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
심하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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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소설 『싱가포르 그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싱가포르 시는 대부분의 다른 도시들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어올린 것이 아니다. 지도를 보고 있던 한 사람이 19세기의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낸 도시이다.”1) 물론 과장이 섞인 관용적 표현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를 꽤 정확하게 압축하고 있기도 하다. 효율적으로 설계되고, 빠르게 정비되는 공간. 느린 축적보다는 압축 성장의 리듬으로 기억되는 도시.
실제로 그곳을 방문해 보면 그 인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지워지지 않은 것들 또한 곳곳에 남아 있다. 식민 통치자의 이름 ‘Raffles(래플스)’는 호텔과 쇼핑몰, 공원의 명칭에 박혀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되었으며, 식민지 시기의 행정 건물은 대부분 본래 외관을 유지한 채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으레 식민지 경험과 ‘굴곡된’ 역사, 그리고 불분명한 근현대의 경계를 거친 나라들이 거리 이름을 바꾸고 동상을 철거하는 것과 달리 이곳의 흔적들은 단순히 청산되거나 보존된 것이 아니라, 다른 기능을 얹은 채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계획된 도시라는 이미지 아래, 싱가포르는 서로 다른 시간들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포개져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상은 도시의 역사에 대한 관찰을 넘어, 싱가포르가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이 도시는 과거를 하나의 기원으로 정리하거나 단일한 서사로 봉합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을 재배치하고 병치시키는 방식을 취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2025년 10월 31일부터 2026년 3월 29일까지 네 곳의 장소에서 개최된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 또한 바로 그 태도를 닮아 있었다.
1.
싱가포르 비엔날레를 보다 깊이 들여다보기에 앞서, 먼저 '비엔날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최근의 비엔날레는 점점 과장된 장치처럼 인식되는 것 같다. 지역성을 드러내되 국제성을 잃을 수 없고, 미술의 내부 논리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현실과의 접촉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많은 것을 포괄하려는 순간 현실은 도식이 되고, 범위를 넓힐수록 어떤 것들은 흘러넘치거나 지워진다.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지적했듯, 전시 규모가 커질수록 예술과 수용자 사이의 친밀함은 약화되고 ‘총체화’의 위험이 발생한다.2) 이는 특정 전시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 자체의 조건이다. 보여주는 순간 가려지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요컨대 비엔날레는 애초에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 형식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의 주제 ‘pure intention’ 은 처음부터 이 구조적 역설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단어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싱가포르를 가리켜 "우연과 무질서가 완전히 배제된 도시, 혼돈조차 기획된 혼돈, 순수한 의도(pure intention)"라고 설명한 데서 왔다.3) 이 문장은 싱가포르를 기술관료적 유토피아인 동시에 창의성이 질식된 공간으로 규정하는 비판이었다. 선한 의도가 이행되지 못한 약속을 뜻한다면, 순수한 의도는 망상에 가까워진다. 도덕적 명료함에 대한 믿음이 너무 완전해서 실패 자체가 보이지 않거나 무관해지는 상태. 참여 작가들은 그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거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거주의 장소들은 각자의 내력을 지닌 곳들이다. 대형 백화점과 고급 호텔 사이에 껴 있는 낡은 파 이스트 쇼핑몰(Far East Shopping Centre), 필리핀과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의 만남의 장이 되는 럭키 플라자( Lucky Plaza)와 페닌슐라 플라자(Peninsula Plaza), 대규모 재개발을 앞둔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주택 단지 중 하나인 탕린 할트(Tanglin Halt), 그리고 식민지 시대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를 잇던 기찻길이었지만 개선 공사를 통해 지금은 시민들의 산책로가 된 레일 코리더(Rail Corridor) 등. 이 장소들은 비엔날레를 위해 새롭게 조성된 공간이 아니기에 작품은 그 안에서 스며들기도 어긋나기도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는 그 어긋남을 숨기기 보다는 오히려 간극이 발생하는 자리를 전시의 일부로 만든다.
2.
먼저 고급 쇼핑 거리 오차드 로드에 위치한 파 이스트 쇼핑몰은 양 옆 럭셔리 브랜드 매장들 사이에서 다소 낡고 시대착오적인 외관을 지닌다. 마치 전통 시장처럼 개별 점주들이 뒤섞여 만들어온 이 유기적인 공간 안에서 더 패킷(The Packet)의 〈이미 지나간 일 / 물속에 잠긴 다리 Water Under the Bridge / A Bridge Under Water〉(2025)는 2000년대 중반의 인터넷 카페를 그대로 재현했다(도 1). 실제로 방문객들이 프린터를 쓰려고 들어오곤 했다는 일화는 이 작업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준다. 낡은 컴퓨터들이 놓인 그 공간은 한때 연결과 진보의 상징이었지만 지금 그 형식은 멈춰버린 시간의 감각을 동반한다. 제목은 익숙한 관용구를 뒤집는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뜻하는 표현은 여기서 '물속에 잠긴 다리'가 된다. 지나간 줄 알았던 것은 완전히 흘러가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물은 가라앉은 과거 위에 덧입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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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The Packet, A Bridge Under Water, 2025, © Courtesy Singapore Art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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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무제 2016 untitled 2016〉(2016)가 놓여 있(었)다(도 2). 작가는 스테인리스 소재의 널찍한 받침 위에 "Freedom Cannot Be Simulated"라는 문구가 찍혀 있는 티셔츠를 쌓아놓고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자유는 추상적 개념이 아닌 복제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물질의 형태를 띤다. 집어 드는 행위 자체가 이미 그 문장을 시험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를 나눠주는 장면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이 작업이 ‘의도’한 것보다 더 복잡한 질문을 남긴다. 2월 중순에 이곳에 방문했을 때, 박스 옆 낮은 테이블에는 티셔츠 재고가 다 떨어졌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자유는 이미 모두 소진된 것인가, 혹은 자유란 애초에 유한하기에 먼저 온 사람의 것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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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16, 2016, © Courtesy Singapore Art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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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의 〈우리의 정체성은 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 Our identity is determined by our productivity〉(2025)는 미얀마 이주민 시인들의 글이 인쇄된 분홍색 피크닉 비닐 시트의 형태로 페닌슐라 플라자의 미얀마 식료품점 여러 곳에 실제 상품으로 납품됐다.4) 매주 일요일 이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나누는 그 자리에 시트는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전시 공간이 아니라 유통망을 통해 이동하며, 감상이 아니라 사용을 통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이 작업이 향하는 공중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그 피크닉 시트 위에 앉는 사람들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예술이 현실과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려는 사람들인가.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작업의 흥미로움은 그 모호함 자체에 있고, 그 모호함은 이번 비엔날레 전체가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반면 장소성을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맥락 사이를 이동하며 의미가 확산되기를 기다리는 작품 또한 존재한다. 줄리앙 아브라함 “또가”(Julian Abraham “Togar”)의 〈드러머는 드럼을 칠 것이다 Drummer’s gonna drum〉(2017)는 작가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도시 욕야카르타(Yogyakarta)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표면을 두드리는 장면을 담는다(도 3). 나무, 돌, 금속, 물과 같은 서로 다른 재질들은 하나의 리듬 안에서 잠시 연결되지만, 그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표면은 저마다 다른 기억을 끌어들이며, 작업은 그 사이를 이동하는 감각 자체를 드러낸다. 이때 ‘의도’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변형되고 흩어지며 작동하는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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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Julian Abraham “Togar”, Drummer’s gonna drum,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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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렇듯 《싱가포르 비엔날레 2025》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순수한 의도'의 성취가 아니다. 의도가 맥락에 의해 흔들리고, 현실과 만나는 순간 더 이상 순수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에 가깝다. 이번 전시는 그 순간들을 숨기지 않는다. 자유를 나눠주는 작업은 소진되고, 작품이 향하는 공중이 누구인지는 끝내 불분명하며, 리듬으로 가로지른 도시의 표면들은 저마다 다른 의미로 흩어진다. 그 어긋남들은 이 전시의 실패가 아니라, 이 전시의 가장 솔직한 지점들을 보여준다.
앞서 콜하스는 싱가포르를 두고 "혼돈조차 기획된 혼돈"이라 했지만, 이번 비엔날레가 드러낸 것은 그 기획이 완전히 포섭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식민 통치자의 이름이 도시의 브랜드로 살아남듯, 멈춰버린 인터넷 카페와 소진된 자유, 그리고 도시의 표면이 만들어낸 리듬 또한 그 자리에 남는다. 싱가포르가 과거의 흔적 위에 다른 기능을 얹어 가며 도시 계획을 전개한 것처럼, 이번 비엔날레도 형식의 한계를 멀끔히 해소하는 대신 그것을 도시의 실제 삶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도시'는 사실 지워지지 않은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 전시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들, 의도가 닿지 못한 자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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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6990&cid=60621&categoryId=60621 (2026년 4월 17일 검색).
2) “GLOBAL TENDENCIES: GLOBALISM AND THE LARGE-SCALE EXHIBITION,” ARTFORUM, https://www.artforum.com/features/global-tendencies-globalism-and-the-large-scale-exhibition-167779/(2026년 4월 17일 검색).
3) “Reclaim Land: The fight for space in the little red dot”, https://justinzhuang.com/posts/reclaim-land-the-fight-for-space-in-the-little-red-dot/ (2026년 4월 16일 검색).
4) 시트에 적힌 시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 참조 https://singaporebiennale.org/poems-our-identity (2026년 4월 18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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