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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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서른 다섯 번째 뉴스레터] 아프로-아시아의 위상학적 아상블라주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의 물리적 한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탈식민주의적 방식으로 세계 다수의 공간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는 없을까?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관계를 탐구하는 최근의 예술적 실천들은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새로운 지리학적 인식의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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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은 지구의 대륙과 바다를 전체적으로 가늠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특정 문화적/사회적/지리적 공간에 매어 있다. 때문에 세계 미술사에서 시공간이 공간의 관찰자와 측정자의 준거틀을 전제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자신의 문화/인종/젠더/계급적 배경을 밝히는 행위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인간 신체가 가 닿을 수 있는 물리적, 지리적 한계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공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한 가지 준거틀을 선택할 때, 필연적으로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는 다른 관계들을 배제하게 된다. 인간의 몸의 물리적 한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탈식민주의적 방식으로 세계 다수(global majority)의 공간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는 없을까?
최근 그러한 맥락에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두 개의 대륙인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지리적 관계를 제고하고자 하는 다양한 예술적 실천들이 등장하고 있다. 2023년 케이프타운과 베를린에서 개최된 《Indigo Waves and Other Stories: Re-Navigating the Afrasian Sea and Notions of Diaspora》는 대만, 남아공, 모리셔스, 인도 등의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을 큐레이팅하면서,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접하고 식민 제국과 상업의 거점지 역할을 했던 인도해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도 제작을 제안한다.1) 예컨대 모잠비크 출신 유리디스 자이투나 칼라(Euridice Zaituna Kala)는 노예선의 항로를 되짚는 설치 작품 <Sea(E)scapes-DNA: Don’t (N)ever Ask> 를 선보였으며(도 1), 말랄라 안드리아라비드라자나(Malala Andrialavidrazana)의 <Figure>는 지도에 포토몽타주로 인도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역사의 회화적, 상징적, 재현적 이미지들을 재현한다.(도 2)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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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Malala Andrialavidrazana, Figures, Photomontages, 2015 - ongoing, Photo: Luca Girardini, Courtesy of Gropius B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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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24년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Translation: Afro-Asian Poetics》는 ‘시학(poetics)’이라는 키워드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공유된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유사성을 살펴본다.3) 지리적, 인종적 거리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연결하려는 이 전시에서, 일례로 코두오 에슌(Kodwo Eshun)과 Anjalika Sagar(안잘리카 사가르)로 이루어진 콜렉티브인 오톨리스 그룹(Otolith Group)은 특히 시와 몸짓의 미장센을 활용한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에서 이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삼대륙주의에 대한 연구를 SF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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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조앤 기(Joan Kee)의 『The Geometries of Afro Asia: Art Beyond Solidarity』(2023) 또한 ‘아프로 아시아(Afro Asia)’라는 용어를 통해 이러한 탐구를 이어간다. 주목할 점은 식민과 폭력, 이주, 영적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신체가 횡단해 왔던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놓지 않으면서도, “아프로-아시안 신체”라는 말 대신 선, 공백, 곡선, 부피 등 “기하학”이라는 은유적 방식을 택할 것을 강조한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작품의 예시들이 이러한 개념과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질지는 의문이나, 이 관점은 이는 ‘아프로-아시아’라는 공간을 좌표와 좌표 간의 위상학적 관계와 아상블라주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곧 신체만을 매개로 공간의 프레임워크를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 비인간 존재, 그리고 물질의 횡단과 관계를 ‘아프로 아시아’라는 추상적인 공간의 범위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프로 아시아와 관련된 최근의 몇몇 예시들은 신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세계 다수의 공간을 인식하는 다양한 방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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