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
|
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스물 여덟 번째 뉴스레터] Extraordinary Cure Garden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뉴욕에 위치한 MoMA 미술관 속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 잡은 4층의 스튜디오에 한 여성의 신비롭고 초월적인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방이 공개되었다.
자신만의 퍼포먼스 페르소나인 신시아(Synthia)를 통해 지속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야기되는 현상과 불안의 감정,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개인적인 경험과 결합시켜 독특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자아 세계를 탐구해온 샤나 몰튼(Shana Moulton)은 이번에 공개된 프로젝트를 통해 또 다른 고통과 치유의 미학을 전달한다.
[Extraordinary Cure Garden]
|
|
|
Extraordinary Cure Garden
김민주 |
|
|
뉴욕에 위치한 MoMA 미술관 속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 잡은 4층의 스튜디오에 한 여성의 신비롭고 초월적인 내면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방이 공개되었다. 자신만의 퍼포먼스 페르소나인 신시아(Synthia)를 통해 지속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야기되는 현상과 불안의 감정,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개인적인 경험과 결합시켜 독특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자아 세계를 탐구해온 샤나 몰튼(Shana Moulton)은 이번에 공개된 프로젝트를 통해 또 다른 고통과 치유의 미학을 전달한다. |
|
|
(도 1) Shana Moulton, Meta/Physical Therapy, 2023-24, Eight-channel 4K and high-definition video (color, sound;), MDF, vinyl, seating, scrims, props, and window gel, 14:49 min, dimensions variable. ⓒ MoMA
|
|
|
스튜디오 전체가 그녀의 방으로 구성된 이번 프로젝트는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실제 물체와 비현실적 물체가 결합된 초월적 오브제들과 상반되는 신시아의 일상적 모습으로 고답적인 분위기 속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도 1). 장소 특정적 특성을 지닌 이번 작품 <Meta/Physical Therapy>(2023-24)는 2002년에 시작된 《Whispering Pines》 시리즈의 연장으로 본인이 직접 경험한 신체적인 한계에 관한 주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1) <Meta/Physical Therapy>(2023-24)는 실제로 고관절염으로 인해 물리치료를 받으며 그녀가 겪었던 물리치료의 수행적이고 의식적인 특성을 기반으로 매일 익혔던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느낀 ‘신비로움’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이전 연작의 연장선에서 이번 작품은 여성의 소비 패턴 가운데 신체적 노화를 겪은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병과 성장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중년의 그녀를 묘사한다.
|
|
|
(도 2) Shana Moulton, Whispering Pines 10, 2018, video, 35min. ⓒ Shana Moulton
|
|
|
《Whispering Pines》 연작에서 몰튼은 영적인 이미지, 의료 기술, 대중문화, 고급 예술, 소비문화에 대한 문제들을 혼합적으로 풀어내며 여성 소비자의 일상적인 소비 패턴 속 반복적인 행위를 통한 트라우마를 투영해 왔다(도 2).
|
|
|
신시아는 운동기구와 스트레칭, 마스크팩 등을 통해 부지런히 자기 관리를 하며 자신과 지구를 치유하려 하지만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된 자기 관리 담론은 결국 개인적 웰빙과 지구적 웰빙의 결합의 모순과 실패를 불러오고, 모공 스트립, 메이크업, 목욕 소금, 향초 등 여성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품 역시 그녀가 미래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사고에 부합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믿고 있는 익숙한 소비 상품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브제와 낙관적인 분위기로 삶에 관한 환상적이고 희망적인 세레나데를 부는 듯 보이지만 모니터 속 평면적인 그래픽과 인물의 결합은 왠지 모를 어색함을 불러일으키며 신시아가 행하고 있는 ‘자본주의 치료법’은 결국 지구 환경 보호에는 비효율적이라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
|
|
(도 3) Shana Moulton, Meta/Physical Therapy, 2023-24, Eight-channel 4K and high-definition video (color, sound;), MDF, vinyl, seating, scrims, props, and window gel, 14:49 min, dimensions variable. ⓒ MoMA
|
|
|
그렇기에 몰튼의 작품은 소비자로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개개인이 원하는 이상향을 이루기 위해 그에 따른 필요와 욕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종종 터무니없는 괴짜 전문가들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맹목적인 믿음을 지닌 우스꽝스러운 현대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번에 선보인 <Meta/Physical Therapy>(2023-24)는 이전보다 선명하고 진보된 그래픽 기술을 기반으로 실제 공간에서의 초월적인 오브제를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며 현대 생활의 복잡성과 치유의 과정을 그려냈다. 이전의 2D 영상 작업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실제적인 방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천장에 매달린 영상 프로젝션과 의식적이고 영적인 이미지로 구현된 네온램프와 조각적 지지대, 그리고 바닥에 있는 영상 프로젝션은 신시아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의식적인 오브제들로 스튜디오 공간 전체를 자유롭게 점유한다.
<Meta/Physical Therapy>(2023-24)는 중앙에 위치한 모니터 아래로 스튜디오 바닥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맑은 개울을 통해 신시아가 아마존에서 주문한 택배를 받는 것으로 영상이 시작된다. 상자에는 세라믹으로 된 꽃병이 들어있고, 신시아는 이 꽃병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며 “꽃병을 어디에 두어야 하지?”라고 인터넷에 검색한다. 검색 결과는 컴퓨터 밖으로 흘러나오고 신시아는 타로 카드의 종류 중 하나인 <Seven of Cups> 형상을 한 떠다니는 월경 컵과 함께 일상적인 움직임을 선보이고 소파에 누워 다양한 운동기구를 활용하여 여성으로서 경험한 익숙한 장면을 구현해낸다(도 3). |
|
|
(참고 도판) Shana Moulton. Every Now and Then I Fall Apart, 2016, performed at La Casa Encendida, Madrid. ⓒ Shana Moulton |
(참고 도판) <Seven of Cups> 타로카드 이미지
|
|
|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시아의 방 안에서 이전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꽃병들과 <Seven of Cups>에서 컵의 의미가 서로 교차하고 있다는 지점이다. 타로 카드 <Seven of Cups>에서 7개의 컵 앞에는 컵을 바라보는 인물의 형상이 있고 각 컵에는 보석, 승리의 화환, 탑, 뱀, 용 등 서로 다른 선택지와 기회가 담겨있으며 이들은 꿈, 소원, 그리고 욕망으로 해석되는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Seven of Cups> 카드가 주는 의미는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마냥 같지는 않으며, 환상과 비현실적인 이상에 흔들리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를 수반한다. 수많은 기회가 놓여 있음에도 각 선택지를 주의 깊게 평가하며 진정한 가치 판단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
|
|
(도 4) Shana Moulton, Meta/Physical Therapy, 2023-24, Eight-channel 4K and high-definition video (color, sound;), MDF, vinyl, seating, scrims, props, and window gel, 14:49 min, dimensions variable. ⓒ 개인 촬영
|
|
|
<Seven of Cups> 속 인물의 모습은 신시아가 방안에 놓인 꽃병과 여러 가지 초월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네온램프와 월경 컵을 두고 고민하는 신시아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현대 사회 속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시아가 방에 누워 열심히 테라 밴드를 사용해 근력을 키우고, 소파에 누워 운동 기구를 만지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흘러넘치는 정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신시아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벅찬 감정을 보인다(도 4). 우리는 분명 우리가 원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운동을 하고, 원하는 다양한 목적에 부합하는 ‘듯’한 기능성 제품을 사용하고, 작고 큰 사안에도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흘러 넘치는 정보 더미를 뒤진다. 심지어는 정보를 어떻게 서치하고 이를 구현하는지, 다시 말해 정보를 어떻게 획기적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한 정보 활용 방안을 고심하는 시대가 되었다. 흘러 넘치는 정보 바닷속 온갖 대량 소비 상품들이 즐비하는 현대 사회에서 왜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는 온전한 ‘웰빙’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
|
|
(도 5) Shana Moulton, Meta/Physical Therapy, 2023-24, Eight-channel 4K and high-definition video (color, sound;), MDF, vinyl, seating, scrims, props, and window gel, 14:49 min, dimensions variable. ⓒ MoMA
|
|
|
신시아의 시각적 어휘를 나타내는 여러 오브제 가운데 그녀의 세라믹 꽃병은 실제 샤나 몰튼의 MRI 이미지를 작품에 결합시켰다. 이 거대한 꽃병 속에는 물고기와 같은 생명체가 떠다니기도 하는데, 이는 몰튼이 지속적으로 보여준 의료 기기, 장식, 영적 도상학, 생명력 등에 주목한 주제 의식들이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로 구현된 것이다. 대량 생산 소비 상품과 함께 웰빙의 여정을 떠나는 신시아는 결국 개인 스팀 사우나 텐트를 타고 외부로 나가 마을 주변을 돌다가 나무에 부딪히고, 물의 정령이 물리치료의 공간으로 그녀를 인도하고 그녀는 태양 에너지로 결국 승화된다(도 5). 태양으로 승화된 신비로운 연출 속 신시아는 대량 생산 문화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불안과 질병 및 노화에 대한 실존적 두려움을 넘어 초월적 해탈을 이루어낸다. 나아가 개울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그녀의 모습은 대량 소비와 기술의 시대에 둘러싸여 피로감에 지쳐 마치 공기 빠진 흐물한 풍선같은 현대인의 모습과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답답한 피로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을 동시에 반영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접하는 행위와 일련의 현상들을 초월적이고 숭고한 존재로 변화시키면서도 어색하게 상반되는 이미지로 이질감을 자아내는 그녀의 작품은 일상적인 내러티브 가운데 초월적인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돌봄과 치유를 둘러싼 물질문화 속 최신 제품과 미디어를 두고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몰튼의 작품은 우리를 둘러싼 소비문화와 공존하는 일상 속 신체적 즐거움, 고통, 혼돈을 신비롭게 구현하며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멀티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
|
|
이번 호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