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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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스물 일 번째 뉴스레터] 시간의 낙차 속 기억을 채집하는 일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비대칭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조류 속에서, 과연 우리는 동일한 ‘지금’을 살고 있는가.
나즈골 안사리니아는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의 낙차 속에서 일상의 흔적을 채집하고자 한다.
그가 선택한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나 여기저기 균열이 가고 조각난 기념물들, 작은 형태의 조각들은 이제는 파편화된 기억들을 보관한다.
낡고, 유약하며, 어딘가 노스탤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과거를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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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지금’에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다만 오늘날 함께 보인다는 사실에 의거해 외부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타인과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에른스트 블로흐, 「비동시성과 변증법의 의무」,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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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가 1930년대 독일의 사회적 갈등에서 목격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20세기 이후 한국의 복합적 상황을 언급할 때 자주 사용된다.1) 단선적인 헤겔식 진보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블로흐의 비동시성 개념은 한국뿐 아니라 후기 식민국가로서 뒤늦게 근대화라는 과제를 떠안아야 했던 아시아·아프리카 등 소위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유효한 개념이다. 한국이 겪었던 내전과 군부독재,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의 일련의 과정은 독립 이후 대다수의 피지배 국가들에게도 공식처럼 적용된다. 이 ‘다중적 시간’은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카빌리에서 목도했던 3세기라는 극단적 격차가 되기도, 서구식 근대화를 모델 삼아 근대를 초극하는 경주가 되기도 한다.2)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위성처럼 공존하는 다중적 시간 속에서도 엄연한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권력체의 관점에서 서구의 시간대는 마땅히 따라야 할 표준이며, 이러한 공적 영역에서의 시간은 사적 영역에서의 시간으로, ‘아래로’ 향하며 개인의 시간에 균열을 가한다. 이렇게 침윤 당한 개인의 시간은 공간과 함께 삶의 흔적으로 기록된다.
나즈골 안사리니아(Nazgol Ansarinia, 1979- ) 역시 이란 혁명이 전개된 1979년 테헤란에서 태어나 압축적인 근/현대화 과정을 경험했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테헤란에는 재개발 열풍이 불며 고층 아파트 건물과 쇼핑몰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이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소득 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3) 작가는 “집단적 기억과 개인의 기억을 앗아가는” 무분별한 도시개발의 파괴성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다.4) 안사리니아가 목격한 이란의 급격한 도시화 현상은 쇠퇴-건축-재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적 변증법이 아닌, 평범한 이들(the ordinary)에겐 삶의 터전을 좀먹는 파괴적 행위였다. 개발의 파괴성은 그의 《수선 Mendings》 연작에서 수직의 갈라진 틈으로 환유된다. 《수선》 연작에서 작가가 사용한 오브제는 거울, 의자, 매트리스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사용하는 사물들이다(도 1, 2). 그러나 우리가 보고, 앉고, 눕는 일상의 사물들은 대칭적으로 그러나 제목과는 역설적으로 미세한 틈으로 갈라져 있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 틈새처럼, 도시화의 상흔은 우리의 삶에 스며들며 일상을 변화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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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Nazgol Ansarinia, Mendings (grey chair), 2012, Wooden chair, glue. ⓒ Green Art Gallery |
(도 2) Nazgol Ansarinia, Mendings (pink mattress), 2012, Mattress, see-through thread, 180 x 54 x 23 cm. ⓒ Green Art Galle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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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 후에도 온전히 원상태로 복귀되지 않는 이 일상용품들처럼 삶에 남겨진 개발의 흔적은 실내공간을 넘어 기념비적 조형물로 확장된다. 안사리니아의 〈막 Membrane〉(2014)은 높이가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종이 작업이다(도 3). 현재는 철거된 테헤란의 2층짜리 건물의 벽 표면을 3D로 스캔해 재가공한 이 작품은 마치 메멘토 모리, 곧 사라질 건물의 운명을 추모하며 제작된 데스 마스크(death mask) 같다.5) 하이디 부허(Heidi Bucher, 1926-1993)의 스키닝(skinning) 기법을 연상시키는 이 캐스팅은 껍질을 벗겨냄으로써 과거의 관습으로부터 분리되는 부허와 달리 되려 과거를 반추하고, 이를 기억하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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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Nazgol Ansarinia, Membrane, 2014, Paper, paste and glue, 550 x 500 cm. ⓒ Green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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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레진으로 제작된 제작된 《기둥 Pillars》(2014-2015) 연작은 이란의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전통과 현대의 단절을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도 4). 주두(capital)와 주신(shaft), 주초(base)로 이루어진 고대 그리스의 기둥 양식을 떠올려 볼 때, 이 기둥들은 어느 것 하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아 마치 폐허가 된 고대도시의 잔해처럼 보인다. 이때 작가가 차용한 고전 양식은 페르시아 제국 시절 이란의 영광스러운 과거 - 그리고 그 덧없음 - 을 재현하는 동시에 이를 모방해 건물 외부를 장식하는 신흥부유층(nouveau riche)을 우아하게 조롱한다.7) 안사리니아는 기둥 내부를 조각내어 1979년 이후 새롭게 제정된 이란 헌법의 경제 및 금융 관련 조항들을 아랍어로 새겨 넣었다(도 5).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한 번영을 약속했던 이란 혁명의 이상과는 달리 혁명 이후 이란의 경제는 침체기에 빠져들었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8) 흩어지고 조각난 채 허공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그 존재로써 혁명의 이상이 허상이었음을 전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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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Nazgol Ansarinia, Surfaces & Solids, Installation view at Green Art Gallery, Dubai, 2015. ⓒ Green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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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Nazgol Ansarinia, Article 49, Pillars, 2014, Cast resin and paint, 20 x 40 x 40 cm. ⓒ Green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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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리니아의 근작인 《연결된 수영장 Connected Pool》(2020) 시리즈는 물을 매개 삼아 아래로 향하는 비동시적 시간을 구체화한 작업이다(도 6). 1960년대 후반 테헤란의 도시계획은 ‘쇼핑몰의 아버지’라 불리는 빅터 그루엔(Victor Gruen, 1903-1980)이 설립한 로스앤젤러스 기반 건축회사 그루엔 어소시에이츠(Gruen Associates)에 의해 진행되었다.9) LA 등 북미 도시를 모델로 한 이 도시계획으로 인해 테헤란의 신식건물에는 수영장이 다수 지어졌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러한 개인 수영장들이 관음증적 시선에 노출되고, 공중도덕을 해친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현재는 대부분 비어 있는 상태이다. 작가는 상공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도심 내 빈 공간(void)처럼 보이는 이 수영장들을 채워져 있을 때의 집단적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저장소로 바라보며 다시 채워지길 바라는 희망을 투사한다. 테헤란의 시간은 외부에서 내부로 흐르며 모든 이들에게 빛바랜 수영장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남겼고, 안사리니아의 작고 푸른 석고 조각들은 과거를 재상상하며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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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6) Nazgol Ansarinia, Pools and Voids, Installation view at Galleria Raffaella Cortese, Milan, 2021.
ⓒ Galleria Raffaella Cort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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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조류 속에서, 과연 우리는 동일한 ‘지금’을 살고 있는가. 나즈골 안사리니아는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의 낙차 속에서 일상의 흔적을 채집하고자 한다. 그가 선택한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나 여기저기 균열이 가고 조각난 기념물들, 작은 형태의 조각들은 이제는 파편화된 기억들을 보관한다. 낡고, 유약하며, 어딘가 노스탤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과거를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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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식민지배, 해방, 전쟁, 분단, 군사독재,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의 과정을 빠르게 거쳤고, 경제적으로는 급격한 산업화와 압축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우정아, 『한국미술의 개념적 전환과 동시대성의 기원』 (소명출판, 2022), 15-16.
2) 알베르 카뮈, 『카빌리의 비참』, 김진오, 서정완 역 (메디치미디어, 2021), 39.
3) Green Art Gallery, “Press Release of NAZGOL ANSARINIA: SURFACES & SOLIDS,” https://www.gagallery.com/exhibitions/surfaces-solids (2024년 2월 16일 검색).
4) https://tique.art/features/nazgol-ansarinia/ (2024년 2월 15일 검색).
5)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안사리니아는 건물 외벽을 3D 스캐너로 스캔한 뒤, 이를 바탕으로 30피스짜리 틀을 만들어 종이와 반죽, 풀로 주형했다. https://www.gagallery.com/exhibitions/surfaces-solids (2024년 3월 27일 재검색).
6) 문혜인, 「자유와 해방을 위한 탈피」,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heidibucher2023/ (2024년 3월 27일 검색).
7) Myrna Ayad, “Nazgol Ansarinia,” https://www.artforum.com/events/nazgol-ansarinia-215248/ (2024년 3월 27일 검색).
8) Jahangir Amuzegar, “The Iranian Economy before and after the Revolution,” Middle East Journal (Summer 1992) 46:3: 417-21.
9) https://tique.art/exhibitions/nazgol-ansarinia-pools-and-voids/ (2024년 3월 29일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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