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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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스물 네 번째 뉴스레터] 진득한 반항의 에로티시즘: 차클라카요 그룹(Grupo Chaclacayo)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에포케 레테의 스물네 번째 레터는 국가 폭력에 저항했던 페루의 차클라카요 그룹을 소개한다.
저항의 방법론으로 폭력을 사용한다면 이 폭력은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하는가?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 점철된 피해자의 저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충분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인가?
이번 레터는 폭력의 피해자가 발화하는 저항의 방법론에 대해 소개한다.
[진득한 반항의 에로티시즘: 차클라카요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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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한 반항의 에로티시즘:
차클라카요 그룹(Grupo Chaclacayo)1)
한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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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클라카요 그룹(Grupo Chaclacayo, 1982-1994)은 헬무트 피소타(Helmut J. Psotta, 1937-2012)와 그의 제자 라울 아베야네다(Raúl Avellaneda), 세르히오 세바요스(Sergio Zevallos, 1962- )가 페루에서 결성한 그룹이다.2) 1980년대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는 군사독재정권 하에 있었다. 강압적이고 경직된 사회는 군사정권이 표방하는 강력한 남성성을 위시로 인종 차별과 퀴어 혐오를 자행했다. 차클라카요 그룹의 구성원 개개인은 이러한 사회가 적대하는 인물이었는데, 독일인인 헬무트 피소타는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가까스로 피한 생존자였고,3) 세르히오 세바요스는 퀴어 당사자였기 때문이다.4) 국가 차원의 배격과 폭력의 피해자로서 이들은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퀴어 정체성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퍼포먼스와 사진 작업을 지속했다. 일련의 작업은 폭력적이고, 야하고, 고통과 쾌락으로 가득 차 있다. 메스꺼움을 유발하는 세련되지 않은 연출이라던가, 복장도착(transvestite)적인 면모들, 관과 사체, 배설물, 태아 그리고 손상된 신체 등의 요소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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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에 군사정권이 자행한 폭력이 만연할 때 차클라카요 그룹의 공식적인 활동 기록이 한 번뿐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다양한 상징을 차용한 퍼포먼스를 통해 국가적 차원의 폭력과 혐오가 만개한 세상을 비판했기 때문이든, 혹은 단순히 작품이 시대에 맞지 않았든 그들의 발화가 세상에 들리기 어려운 상황임을 암시한다. 차클라카요 그룹은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종교적인 상징과 사도마조히즘의 가학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끌어들인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대다수는 국교를 카톨릭으로 채택하였는데, 국가가 이미 지정한 종교라는 점에서 국가에 귀속된 개인은 성장 환경에서 카톨릭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차클라카요 그룹은 종교가 지닌 강제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카톨릭이 금기시한 성적 방종을 사도마조히즘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이 선택한 모든 요소에는 이처럼 권력과 강제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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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Grupo Chaclacayo, Procesión, 1982, 종이에 실버 프린팅, 12x9 cm, 촬영: César Guer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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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클라카요 그룹은 종교적 상징과 ‘군대’가 표방하는 영웅적 남성성을 뒤섞으며 권위를 공격한다.6) 종교와 군사 정권이 가진 권력은 무조건적인 지지하에 이루어지는데, 이는 맹목적인 믿음 없이는 종교와 군사 정권이 유지될 수 없을만큼 권위가 허구적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룹으로써 한 첫번째 활동인 <행진 Procesión>(1982)은 쓰레기 더미로 만든 제단을 어깨에 이고 페루 가톨릭대학교(Pontifical Catholic University of Peru, PUCP)를 비롯한 수도 근교를 행진한 퍼포먼스이다(도 1).7) 이 제단에는 리마의 성녀 로사(Santa Rosa de Lima)와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Pinochet)의 초상이 포함되어 있다.8) 성녀 로사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성인으로 추대된 첫번째 인물로, 페루의 화폐에도 등장했을만큼 상징성이 강한 인물이다. 개인의 선택이 거세된 믿음으로서의 국교와, 개인의 주장이 억압된 체계인 군사 독재는 삶에 스며들듯 강요된다. 이 둘은 사회 전체의 암묵적인 승인에 기대어 권위를 획득한다. 그를 떠받치는 이들이 사라지면 권위는 언제라도, 이 제단 위 쓰레기처럼 하잘것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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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Grupo Chaclacayo, Liberta militar, 1983, 바리타지에 실버 프린팅, 7x9 cm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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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Grupo Chaclacayo, Liberta militar, 1983, 바리타지에 실버 프린팅, 7x9 cm 8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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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 Suburbios≫ 시리즈는 차클라카요 그룹의 대표적인 작업으로, <해방 군인 Liberta militar>(1983)이 포함된 시리즈이다(도 2).9) 여기서 세르히오 세바요스는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꽃을 쥔 채 증명사진을 찍듯 정면을 응시한다. 흰 꽃을 머리에 꽂고 또 손에 쥔 그의 모습은 성녀의 그것과도 겹쳐지며, 이는 다음 컷에 그가 쓴 미사보에서 더욱 강조된다. 눈의 흰자를 드러낸 채 입을 벌린 그의 표정은 엑스터시(Ecstasy) 혹은 죽음에 이른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극한의 고통이 쾌락과 만나는 주이상스(Jouissance)는 순교하는 성녀를 묘사할 때 종종 등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군인 신분증의 증명사진의 형식을 빌려 성적인 모티프를 삽입한 이 사진 작업은 제목의 ‘해방(Liberta)’과 맞물려 군사 정권에서의 해방이자 종교가 요구하는 맹목적 믿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중의적으로 비꼬고 있다.
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또 다른 요소로써 자학의 이미지는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를 연상시킨다. ≪외곽≫의 또 다른 작품인 <병영 Cuartel>(1983)을 보면, 하얀 꽃을 머리에 꽂은 세르히오 세바요스가 검은 팬티스타킹만 입고 끈으로 몸을 묶은 채 명치께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팬티스타킹과 속박(Bondage), 칼을 쥔 손과 칼이 향하는 방향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제목에서 우리는 이 사진 속 인물이 군인임을 유추할 수 있는데, 그가 퀴어 당사자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혐오를 하는 집단의 가해자와 그 혐오를 받아내는 피해자가 동일하게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 점철된 복합적인 인물의 상태는 여기서 드러난다.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다시 폭력을 꺼내어드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이를 단지 변태적인 도착이라고만 이해해야 하나? 자기 가해를 통해 발화되는 저항의 방식은 가해와 피해를 동시에 감내하면서 승화된다. 삭혀지지 않은 분노로 쥔 칼 끝은 언제나 본인을 향하며 사회의 혐오와 자신의 분노를 한 몸으로 받아내는 스스로를 향한 깊은 연민이 뒤엉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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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Grupo Chaclacayo, Cuartel, 1983, 바리타지에 실버 프린팅, 60x43.5 cm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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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나 사회적 차원의 혐오는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이다. 한 개인이 거대한 폭력의 피해자가 될 때 가장 즉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대항은 복수이다. 나에게 폭력을 가한만큼 갚아주는 것, 거짓된 참회라도 받아내어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는 것. 그러나 복수는 말만큼 쉽지가 않다. 피해자는 이미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본래 자리에서 굴러 떨어졌고, 온전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최근 대중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회귀/환생물의 등장인물은 돌이킬 수 없는 가해를 끼친 인물에게 복수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짊어지고 그것만을 위해 제 2의 삶을 버틴다. 죽은 다음에야 모종의 힘을 빌려서 할 수 있는 행위-그만큼의 불가능성을 이겨내야만 하는-가 바로 복수인 것이다.
회귀도, 환생도 하지 못하는 삶에서 폭력의 피해자는 어떠한가? 한 번 가해진 고통은 남은 생 전부에 영향을 끼쳐 극복하기 어려운 짐덩이가 된다. 떨쳐내기 어려운 망령이 불시에 삶을 공격해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곱씹게 된다. 폭력의 가해자는 외부에 있지만 그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마치 자신에게 있는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특정한 정체성을 지녀서 등등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원망의 화살표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래서 폭력의 피해자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가해자를 미워하고 동시에 고통의 '원인'인 자신을 미워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고통을 결국 지나쳐온 자신을 연민한다. 차클라카요 그룹의 활동은 자신을 응징하는 동시에 그 고통을 겪는 자신을 외부에 내보임으로써 폭력에 저항해왔음을 보여준다. 낯설고 변태적인 것으로 단숨에 읽히는 작업의 내면에 위치한 이들의 상황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남겨 놓는다: 우리가 폭력의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충분한 사유 끝에 나온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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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발음상 ‘그루뽀 차클라카요’에 가깝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의미의 영문 ‘그룹( group)’ 으로 표기하였다.
7) 리마국립미술관 도록 <UN CUERPO AMBULANTE>, 160.
9) 한국어 제목은 임의의 번역이다. 원제 Liberta militar는 해방 군인으로 직역할 수 있지만, 영어 번역 제목은 군 신분증(Military ID card)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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