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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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열네 번째 뉴스레터]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에포케 레테의 열네 번째 레터는 마치 중력처럼 우리를 끌어당기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워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민정은 니시야마 미나코의 <핑크 하우스>에서 바비랜드와의 유사성에 착안해 두 세계 사이의 교차점을 짚어낸다.
박초림은 이재석의 '인간 부품' 도상을 통해 현대사회에 내재하는 모순적인 시스템을 다시 바라보고, 이를 지적한다.
[① 바비랜드의 이면, 니시야마 미나코의 <핑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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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랜드의 이면, 니시야마 미나코의 <핑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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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의 열풍이 거세다(도 1). 이미 첫 상영주간에 3억 56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유례없는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바비’는 유독 한국에서는 실적이 부진한 편이지만,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핑크 컬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증가하며 분홍색을 전면에 내세운 바비코어(Barbiecore) 패션 역시 큰 인기를 끌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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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영화 ‘바비’의 스페셜 포스터. ⓒWarner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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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미미’, 일본에서는 ‘리카쨩’ 등 수많은 아류들을 탄생시키며 전세계 여자 아이들의 소꿉친구였던 바비가 단순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넘어 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 너도나도 바비 열풍에 동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 바비랜드에서 바비는, 문자 그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대통령, 의사, 물리학자, 건설인부, 심지어 다른 종(種)인 인어까지. 영화의 주인공인 마고 로비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바비(stereotypical Barbie)’이지만, 영화에는 다양한 피부색과 체형의 바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꾸린 바비랜드는 온갖 채도의 핑크색이 난무하는, 사회적인 여성성을 극단으로 내세운 장소이다. 오히려 바비랜드 속 남성 캐릭터인 켄은 바비에 부수적인(secondary) 존재이며, 그는 늘 바비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여성성, 부드러운 ‘여성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로 가득한 바비랜드는 그러나 현실과는 유리된 장소이다. 믿기 힘들만큼 완벽한 삶을 살고 있던 바비의 진짜 문제는 늘 공중에 한 뼘 떠있던 그녀의 발뒤꿈치가 땅바닥에 닿으며 시작된다. 하이힐과 버켄스탁 중 버켄스탁을 선택하고 현실세계로 간 그녀는 모든 것이 바비랜드와 정반대인 상황을 마주한다. 많은 여성 관객들이 영화 ‘바비’에 공감하는 부분 역시 그녀들이 현실에서 마주했을 이러한 모순점들일 것이다. 거리에 나간 바비는 캣콜링을 당하고, (남성) 경찰에게 쫓기고, 마텔의 (남성) 이사진에게 쫓긴다. 어린 시절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던 글로리아는 이제 마텔 본사에서 근무하는 워킹맘이며, 그녀의 딸 사샤는 바비를 어린 소녀들에게 비현실적인 미적 기준을 강요하는 파시스트라 생각하며 바비에게 못된 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도 극단적인 여성성이 통용되거나, 오히려 장려되는 곳이 있다. 바로 섹스산업이다. 바비랜드가 여성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끝없는 낙관주의로 점철된 양지의 공간이라면, 섹스산업 역시 여성이 노동자로 일하며 돈을 벌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음지의 공간이다 – 단지 그것이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일 뿐. 여성성을 내세워야 소비되는 섹스산업은 일본에서 ‘핑크’산업이라 불리며 강렬한 색감의 분홍색으로 상징된다. 특히 섹스산업의 광고를 비롯해 만화와 장난감 등 일본의 소비문화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카와이(kawaii)’ 미학은 전후 일본에서 나타난 문화의 유아화(infanticization) 현상과 결부되며, 일본 전후세대의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미성숙하고 순종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주입했다.2)
‘귀엽고’ ‘예쁘장하며’ ‘사랑스러운’ 요소들을 포함하는 카와이 미학은 대중문화의 기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1990년대 일본의 네오팝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시각예술에서의 카와이 현상은 먼저 1980년대 중반 젊은 여성 작가들이 ‘쇼죠(少女, shôjo)’, 즉 소녀들의 문화를 작품의 모티프로 차용하며 등장했다.3) 니시야마 미나코(Nishiyama Minako, 1965-) 역시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에서는 일관되게 카와이 문화의 핑크빛과 소위 말하는 공주풍의 로코코적 요소가 나타난다. 니시야마의 초기작 <무제 Untitled>(1988)는 분홍색 레이스를 두른 나무상자 안에 여러 개의 큐피인형(kewpie doll)을 넣어 만든 작품이다(도 2). 정면에서 보면 큐피드를 떠올리게 할 만큼 귀엽고 통통한 큐피인형이지만, 작가는 관람객들이 인형의 정수리만 볼 수 있도록 배치함으로써 인형의 순진무구함과는 또 다른 시각적 효과를 유도한다. 인형의 볼록 솟은 정수리는 위에서 보았을 때 핑크색의 레이스 주름과 어우러지며 여성의 유방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작가는 여성에게 소녀스러운 천진함과 성적 매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일본의 이중적 젠더 관념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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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니시야마 미나코, <무제 Untitled>, 1988, 나무상자, 큐피인형, 기타, 20.9 x 26.1 x 10.5 cm. ⓒNishiyama Min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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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니시야마 미나코, <핑크 하우스 The Pinkú House>, 1991, 혼합매체, 310 x 400 x 370 cm,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Nishiyama Minak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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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하우스 The Pinkú House>(1991)에서는 이러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도 3). 바비 인형의 일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리카쨩의 집을 실물 크기로 제작한 이 설치를 통해 니시야마는 일본 완구산업에서 여아들을 겨냥한 상품과 섹스산업의 광고 전략에서 사용되는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했다.4) 우아함보다는 조악함에 가까운 쨍한 핑크빛 벽면과 키치한 로코코풍의 침대는 러브호텔의 전형적인 내부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편, 관객참여형 퍼포먼스인 <모시모시 핑크 Moshi Moshi Pink>(1995)는 카와이 문화와 섹스산업의 연관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니시야마는 이 퍼포먼스에서 전화번호와 만화 캐릭터 이미지가 인쇄된 핑크색 스티커를 거리 곳곳에 뿌려 마치 텔레쿠라(テレクラ, telekura)의 광고전단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5) 그리고 이 스티커를 본 누군가가 전화를 걸면, 갤러리 내부에 설치된 전화벨이 울린다. 작가는 그때 갤러리를 방문한 관람객이 전화를 받을 것을 의도했다.
바비의 드림하우스와 니시야마 미나코의 <핑크 하우스>는 모두 사회적 여성성을 극단으로 내세우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는 평행우주를 이룬다. '켄은 그저 켄일 뿐인' 바비랜드와 '켄을 위해 존재하는 핑크 하우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핑크빛 평행세계에서 발견되는 명확한 시각적 유사성은 어렸을 적 바비를 가지고 놀던 이들이 현실과의 교차지점에서 '포털'의 균열을 인식하게 만든다. 불행 따윈 모른 채 늘 행복한 꿈만 꿀 것 같은 - 혹은 꾸어야만 하는 - 핑크 하우스에서 어딘지 모를 기이함을 느끼게 되는 건 이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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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uko Hasegawa, “Post-identity Kawaii: Commerce, Gender and Contemporary Japanese Art,” in Consuming Bodies: Sex and Contemporary Japanese Art, ed. Fran Lloyd (London: Reaktion Books, 2002), 127-28.
3) 이들은 『미술수첩』 1986년 8월호에서 ‘미술의 슈퍼걸스(Super girls in art)’라고 명명되며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Gunhild Borggreen, “Cute and Cool in Contemporary Japanese Visual Arts,” The Copenhagen Journal of Asian Studies 29:1 (2011): 45-46.
4) Hasegawa, “Post-identity Kawaii,” 128-29.
5) ‘텔레폰 클럽(telephone club)’의 줄임말인 텔레쿠라는 전화를 통해 여성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가게이다. 돈을 지불한 남성이 전화를 걸면, 대화를 통해 만남의 수위가 결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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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것에 관해 대항하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흔히 젠더 권력을 성차(性差)에 따른 불평등 또는 차별만을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는 더 나아가 ‘인종, 사회적 계급, 성소수자, 노인, 아동’ 등 훨씬 넓은 범위에서까지 상호교차되어 발생한다. 초남성 공간이자 가부장적이고 중앙집권화된 지배권력 체계로 형성된 대한민국의 ‘군대’라는 조직에서는 표준화된 정상 남성에 부합하지 않은 존재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말 그대로 군대는 젠더 권력이 가장 흔하게 적용되어 폭력 혹은 처벌이 용인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엄청난 열풍에 힘입어 시즌 2까지 제작된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를 보라. 연약하고 유약한,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과 거리가 먼 남성은 단숨에 '병X'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세상에 설 수 없는 존재로 내몰린다. 이렇게 단순히 성별을 넘어 재산이나 성격, 학력, 고향 또는 사람이 가진 사회적 지위에 따라 ‘권력’의 이동은 발생한다. 그러니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무조건적인 상위계급을 탈환할 수 없단 걸 알기에 드라마에 공감하는 이들이 컸으리라. 따라서 누구든 자신의 준거집단에 의해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이에 따른 기민한 감각을 키워 사회를 다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에서도 ‘군대’는 오래도록 지배적인 권력층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자 이용했던 표상이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 표상은 대부분 전투 중인 모습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하여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작되었다. 반면 2000년대부터 오인환(b. 1965), 박경근(b. 1978)과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군대문화 및 병영문화에 대해 사실적으로 꼬집는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 소개할 이재석(b. 1989) 작가 역시 이들의 후발 주자로서 자신의 작품에 군대 이야기를 담는다. 군 조직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그에게 군대의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한다. 이재석의 작품에 관한 포인트는 현대(군대) 시스템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무기와 살점, 기계 부품과 같은 폭력적이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미지를 건조하게 반복해 패턴으로 나타냄으로써 무력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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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이재석, <자화상3>, 2018, acrylic on canvas, 130 × 80 cm |
(도 2) 이재석, <신체가 있는 부품도>, 2018, acrylic on canvas, 193.9 × 130.3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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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3>(2018)을 보면 단순한 형태로 분해된 부품이 인간 그 자체가 되어 불침번을 서는 인물로 나타난다(도 1).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작가는 자신을 완전히 부품과 동일시하여 자화상으로 그려냈으며, 이는 통제와 억압의 시스템 공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고유한 인격과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경험을 시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하나의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부품들이 모여 탑처럼 쌓아 올려진 모습은 군의 수직적인 위계 속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겨지는 군인이라는 표상과도 연관지어 읽을 수 있다.
<신체가 있는 부품도>(2018)에서는 기계 부품이 마치 분절된 신체 조각처럼 공간을 부유하고 있다(도 2). 이곳에 르네상스 시기 유행했던 콘트라포스토(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실어 짝다리를 짚은 자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인물 형상은 분명한 시사점이 있다. 뒤러의 <아담>(1507)을 연상시키는 듯 우아함을 뽐내고 있는 자태도, 근육이 많이 생략된 채 한눈에 보아도 마르고 선이 고운 남성 신체는 분명 ‘남성적’인 면모를 기대하는 다수의 고정관념-또는 시선-을 전복시킨다. 또한 그 위로 대비되는 새빨간 핏덩이 같은 부품들이 규칙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인간이 기계인 듯, 기계가 인간인 듯 분간할 수 없도록 구성되었다. 이렇듯 인물에 대한 정보를 교묘하게 가리어 노출한 것은 그를 더욱 남성인지, 여성인지 혹은 특정할 수 없는 성(gender)인지 관객이 찾고자 하는 의식을 방해하면서 결론에 도달할 수 없게끔 한다. 즉 작가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지워 더욱 의문투성이로 만들지만, 이를 통해 마치 ‘너희가 궁금한 이 사람은 어떠한 개성, 특성, 성질도 자리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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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이재석, <나열된 부품들>, 2018, acrylic on canvas, 130 x 97 cm |
(도 4) 이재석, <부품들의 정렬>, 2020, acrylic on canvas, 227.3 x 181.8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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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열된 부품들>(2018)과 <부품들의 정렬>(2020)은 강한 원색의 색감이 강조되어 초현실적인 자연 배경 안에 마치 잘린 손과 총구가 결합될 수 있는 것처럼 '조립 설명서'를 연상시킨다(도 3, 4). 무기로는 기능할 수 없는 육체지만 육체 없이 작동할 수 없는 것이 무기이다. 또한 기계 역시 작은 부품 하나만 빠져도 작동할 수 없고 인간의 육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육체와 결합한 무기는 인간을 지킬 수도, 살인할 수도 있다. 작가는 이 둘의 불가분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아이러니함과 유사한 성질을 들춰내듯 이질적인 재현을 낯선 구도로 제시한다.
이재석의 작품에서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배경이다. 정교하게 정렬된 신체 조각과 기계 부품 뒤로 원색의 촉각이 살아있는 배경 이미지는 청량하다 못해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부품 하나하나를 분해하여 공간을 점유한 작가는 작은 역할의 존재감에 집중시키기도 하지만, 파편화된 작은 구조를 통해 큰 구조를 바라보게끔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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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군대의 수직적이고 통제되어지는 권력구조는 인간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기 보다는 커다란 기계 속의 부품으로 보는 느낌에 가깝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단체로서 어떠한 목적성에 효율적으로 도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보였다.”1)
-이재석 작가 노트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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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대로 그는 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인간과 조직, 사회 사이에서 만들어진 권력의 개념과 구조에 관해 다층적인 탐구를 중첩해 왔다. 이재석만의 낯선 긴장감을 주는 기묘한 연출력이 일상의 익숙해져 버린 폐단을 '톡'하고 짚어내는 것은 그만큼 오랜 번뇌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란 걸 알 수 있다.
그가 가시화한 군대에서 쓸모로만 기능하고 묻혀버린 인간 주체에 관한 문제는 더 크게 보면 우리 사회와도 연결되어 있다. 군 조직에서 필수인 '규칙과 명확성'은 사회 안에서도 필수적이며, 우리는 그 이면에 내재한 '불규칙하고도 모순적인' 속성들을 간과하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모른 척 지나는 것을 거부하고, 일상에서 자행되어져 온 현대의 모순적인 시스템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러한 점에서 이재석의 작품 속 고유성과 특성이 지워진 채, 권력 체계 안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은 사회 전반에 많은 것을 질문하고 시사한다. 작품 속 분해된 인간 부품이 그저 '인간과 기계의 차이 혹은 유사함 그 어느 선상에 있는 것' 정도를 가리키는 것 같다면 그것은 너무 나이브한 해석일 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가 나타낸 도상이 이 사회의 양면성을 들추고, 경계의 틈을 벌려 긴요한 담화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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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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