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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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열세 번째 뉴스레터] 무지개 표지와 빛 바랜 공동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에포케 레테의 열세 번째 레터는 친족 공동체를 둘러싼 상반된 관점의 두 개의 글을 다룬다.
김민주는 장샤오강의 작품으로부터 혈연과 상흔으로 속박되어 그 빛을 다한 공동체, 그 흔적으로부터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박예린은 수원시립미술관의 《어떤 Norm(all)》 전시가 무지개색 빛깔의 공동체를 호명하며 취하는 목소리와 태도를 곱씹어 본다.
빛 바랜 공동체의 미약한 등불을 들고, 무지개색 표지를 따라갈 때 도래할 어떤 미래를 상상하면서.
[① 숨겨진 가계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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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미술은 독특한 표현과 주제들로 시선을 이끌어 표면 아래 숨겨진 사실을 마주하게끔 만든다. 그러고 난 뒤 엄습하는 불편함은 관람자의 몫을 넘어 모두의 삶과 주변 이웃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작동된다. 국제 미술 시장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끄는 중국 작가들 가운데 장샤오강(Zhang Xiagang, 1958- )의 작품은 특정한 시대를 살아온 인민들의 감수성을 한 폭에 담아 중국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심을 지속적으로 표출해 나간다.
작품 내부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고뇌의 감정은 어쩌면 그들이 갈망하고 그토록 바랬던 무언가에 대한 작은 염원을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장샤오강의 작품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진실을 관통하고 마주하여 개인의 사유와 존재 가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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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Zhang Xiaogang, Landscape with Children, 2007-2008, Oil on canvas, 250x30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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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도로의 거칠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붉게 물든 아기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다(도 1). 어딘지 모르는 낯선 도로 위에 놓인 아기의 표정은 아이다운 천진난만함과는 달리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으며 무의식 속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이 공존한다. 회색빛의 도로와 대조되는 아기의 붉게 물든 피부는 그 자체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아기와 인접한 위치에서 또 다른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는 커다란 높이의 확성기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체제 선전을 상징하는 시각적 도구로 작용한다.
붉게 물든 아기, 커다란 확성기, 그리고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라는 세 가지 알레고리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특수성이라는 교차점을 지나 그 시절 인민들의 상황과 감수성을 한 폭에 담아낸다. 그러한 지점에서 자신이 처한 시대의 정치적 무력감을 허무와 냉소적 코드로 풍자하는 장샤오강의 작품은 작품 내면에 존재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물 그리고 장소가 지니는 관계를 재고하게끔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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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Zhang Xiaogang, Bloodine : Big Family, 1999, Oil on canvas, 150x19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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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강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의 유년 시절 주변 환경과 이웃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 시대 인민들의 정서를 면밀히 들여다보게 되는 관찰자의 시점에 놓이게 된다. 인민들의 집단 공동체적 모습을 표현하기 시작한 작품은 <혈연 Bloodine> 연작이다. 1993년부터 선보이는 <혈연-대가족 Bloodine - Big Family> 연작에서의 공통적인 가족사진 구도는 당시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했던 사진 양식이자 유행했던 의복을 보여준다(도 2). 획일화된 구도와 개성이 사라진 의복,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성별과 무표정으로 복제된듯한 이들의 모습은 단체로 백일몽을 꾸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획일성을 지닌다. 평등과 획일성이라는 집단주의 틀 안에서 중국이 지닌 역사와 정치적인 상황 아래 집단주의 합리화로 억압되었던 개인의 욕망과 자유는 그들에게 있어 무언의 폭력이자 상처와 트라우마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민감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상황 속 개인과 집단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 가운데, 눈에 띄는 또 다른 도상은 인물 대부분의 얼굴에서 보이는 ‘얼룩’과 각 인물들을 연결짓고 있는 ‘붉은 실’이다. 인물의 얼굴에 자리 잡은 얼룩은 빛이 사람의 얼굴을 때리는 듯 색감이 드리워졌다가 서서히 옅어져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나타낸다. 이는 앞서 언급한 중국의 집단주의적 상황 아래 그들이 겪은 모순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슬픔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보여진다. 나아가 대가족 형태가 주를 이루던 시대에 중국 인민들의 모습 속 개개인은 혈연관계, 친족 관계, 동시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공동체 관계를 지니고 있으나 사회와 개인은 불순종적이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복잡한 관계로 읽힌다.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붉은 실은 작품 속에서 관계하고 있는 인물들을 넘어 장샤오강의 주변 이웃과 이데올로기적 시대상을 겪은 인민 모두를 연결하고 있을 것이다.
즉,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음에도 각자의 삶을 억누른 채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갈망하지만 현실을 벗어날 수 없었던 집단주의 상황 아래 시대적 번뇌를 겪은 이들만이 공유하는 ‘얼룩’진 상처를 ‘붉은 실’로 연결하여 공동체적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붉은 실과 혈연이라는 도상은 선택할 수도 끊어낼 수도 없는 개인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인민들의 일상 속 숨겨진 가계를 표상하여 그들만이 공유하는 고뇌와 트라우마를 작품 내부로 소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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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Zhang Xiaogang, Identity Portrait, 2003,
Oil on canvas, 35.9x30cm |
(도 4) Zhang Xiaogang, Heaven, 2010, Mixed media, 215x162x82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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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어서는 <망각과 기억 Amnesia and Memory>, <인 앤 아웃 In&Out>, <기술 Description>, <전구 Light> 연작 등을 통해 개인과 사물의 관계를 탐구하며 기억에 대한 변화를 고찰해 나간다. 주로 과거의 기억을 표상하는 오브제를 확대하거나 오브제와 인물을 함께 배치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눈물을 머금고 있거나 감정이 담긴 인물의 표정을 한 폭에 가득 채워 담아내는 등 동작과 구도, 그리고 새로운 매체 등을 실험하기 시작하는데 획일화된 가족사진에서 벗어나 개인의 감정과 함축된 오브제들로 섬세하게 유년 시절 환경과 인민들의 정서를 표상해 나가는 것이다.(도 3, 4).1) 과거의 함축된 상징물에 대한 회화적 언어를 <천국 Heaven>(2010) 작품을 통해 새로운 매체로 확장하여 작품 속 낡은 침대와 전구는 마치 서민들의 삶 속에서 언젠가는 꺼져가는 이상을 보여준다. 수신인을 밝히지 않고 마음속 깊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는 조심스럽게 언어와 사물의 의미를 사유하게끔 유도한다.
과거 추억이라는 개념과 함께 마음속에서 잊혀 가는 것들과 기억이 남긴 흔적에 대해 주목하는 장샤오강의 작품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신이 경험한 사건, 일상에서 겪은 일, 부모님, 그리고 주변 이웃에 대한 고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고찰하게끔 주도한다.
마침내 그들만이 겪었던 아픔과 그 속에서도 현존하는 개인의 정체성은 중국 인민 모두의 염원을 보여준다. 장샤오강의 작품이 보면 볼수록 아려오는 이유는 작품을 뚫고 나와 소리없이 울리는 억압과 자유라는 이중적인 태도가 고뇌외 간절함이라는 감정으로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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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속에는 주로 녹색의 벽, 오래된 전화기, 히터, 전구, 공관건물, 소파, 잉크펜 등과 같은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이는 장샤오강의 유년 시절이자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한 상징물로 인민 모두가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익숙한 사물 혹은 소재들이다. 이를 미루어 보면 장샤오강은 작품 내부에서 존재하는 역사적인 상황 아래 그들만이 간직하는 집단 기억과 시대 정서를 특정한 사물을 통해 집약적으로 표상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기억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시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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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8일부터 8월 20일까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 질문을 제기하고 대안적인 가족의 형태를 제안하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는 《어떤 Norm(all)》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전시의 막바지를 바라보고 있다(도 1). 유교적 전통과 효의 미덕을 대표하는 이 도시의 시립미술관이 이러한 내용의 전시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4대 째 수원 토박이로서 느끼는 개인적인 감상은 차치하더라도, 이 전시의 등장은 대중적인 감수성이 가족 형태의 정상성에 대한 의문에는 얼마간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말 오후에 아장아장 걸음마 하는 아이와 손잡고 나들이를 온 젊은 부부, 등산화를 신고 어리둥절하게 선 중년 남성들에게 이 전시가 보여지는 것에 만족해야 하나? 전시는 얼마나 긴요한 기획을 감행하였는가? 그것이 조심스럽게 톤을 가다듬으면서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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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 《어떤 Norm(all)》 전시 포스터, 2023, 수원시립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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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변모하는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고 사회 내 모든 가족을 포용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기획 취지에서처럼, 본래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실상 ‘정상’적인 형태(1부)와 ‘비정상적’인 형태(2부)로 양분하여 현재의 가족 제도를 이해하며 ‘정상과 비정상 가족 형태 모두를 긍정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제시하겠다(3부)는 다소 도식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부는 중산층 4인 가족의 구성원과 제도에서 소외된 사회구성원들의 현실을 사회학적, 인류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치밀하고 현실적으로 비판하거나 (박혜수), 결혼과 출산, 가족 형성에 있어 국가의 생명정치 시스템을 고발하며 사회적 압력에 대한 사적인 경험을 드러내고 (강태훈),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의 아내/어머니 역할을 충실히 수호하다 ⏤ 아이를 업고, 수유를 하다가 ⏤ 종국에는 ‘미친년’들을 소환하여 (박영숙) 정상 가족 제도의 폭력성에 나름의 다층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2부 또한 장애를 언젠가는 치료할 수 있는 상태로 바라보는 어머니, 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의 감각을 드러내고 (문지영), 자신의 소수자성을 증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현실과 가족적 연대를 다루며 (치명타), 1인 가구, 한부모 가정,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가정, 동거 가족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가시화하고 (이은새), 이성애 재생산주의 가족 제도의 바깥을 꿈꿀 때 숨쉬듯 직면하게 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홍민키) 작품들로 구성되어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시각을 할당하고자 한 노력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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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작품들이 가족 제도를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다루는 경향이 있는 반면, 2부의 작품 구성은 대체로 다양한 가족 형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다루는 경향을 띤다(도 2). 전시의 흐름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 형태가 합법화될 수 있도록 공동체 제도가 더욱 세밀하게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최근의 생활공동체,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로 흐른다. 그렇다면 이 공공 전시가 가장 말하고 싶은 부분은 새로운 형태의 반려 관계를 제안하겠다는 3부의 작품 내용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전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주장은 3부의 입구에 나란히 자리한 업체(eobchae)와 안가영의 작품을 지나쳐야 마주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이 제시하는 SF의 사변적 상상력은 현실의 문제들에 의미 있는 물음과 대안을 만들어 내지만, 전시가 선택한 작품의 접근 방식은 전시가 배경으로 삼는 전제 그리고 1부와 2부의 다른 작품들과 충돌하면서 설익은 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물론 작품의 완결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기보다, 전시의 서사 안에서 작품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가깝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행성인 ‘히온’으로까지 이주하는 대안의 선택 혹은 <대디 레지던시 Daddy Residency>의 낙관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비하면, 전시가 요구하는 ‘선택적 가족(chosen family)’의 법제화 문제는 너무 실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는 이러한 요구를 가시적으로 발화하기를 꺼리는 대신, 전시장의 한 켠에 위치한 아카이브존에 비치된 도서들을 통해 이를 암시할 뿐이었다. 아카이브 존을 통한 전시의 안전한 말하기는 나란히 놓인 김용관의 <무지개 반사 Rainbow Mirroring>(2022-2023)와 비슷하게 보이나 전혀 같지 않다(도 3, 4). 작품에 나타나는 ‘무지개’가 프리즘에 반영되는 무한한 색들과 아직 (혹은 영원히) 명명되지 않은/을 수많은 가능성을 위한 추상적 유보였다면, 전시가 아카이브 존에 놓아둔 형형색색의 무지개색 책표지들은 게이라고, 레즈비언이라고, 퀴어라고 말할 수 없어 색으로 대체된 언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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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김용관, <무지개 반사 Rainbow Mirroring>, 2022, 종이 박스에 인쇄, 가변 크기 |
(도 4) 김용관, <무지개 반사 Rainbow Mirroring>, 2022, 종이 박스에 인쇄, 가변 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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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 평범한 미래는 상상만으로 가능한가? 적어도 전시는 그렇지 않음을 말하려 했던 듯하다. 그러나 무엇을 전시하든 화이트큐브 안에서만큼은 공손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관람자들을 향해, 역시 조심스럽게도 무지개색의 표지들은 무성의 메아리를 반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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