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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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일곱 번째 뉴스레터] 흩어지는 것을 붙잡을 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에포케 레테의 일곱 번째 레터는 아카이브 아트의 면면에 대한 글이다.
「노스탤직 열병(nostalgic fever): 노상관찰학회와 ‘원풍경(原風景)」은 일본에서 결성된 '노상관찰학회'를 '원풍경' 현상과 함께 살펴보며 노스탤지어 정서와 아카이브 열병을 관계시킨다.
「삶을 맞대고, 사랑을 살피고. 미령한 나의 친구들에게」는 지난 12월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렸던 '살친구'의 전시에 나타난 탈위계적이고 다정한 면모를 퀴어한 아카이브와 연결지어 본다.
[①노스탤직 열병(nostalgic fever): 노상관찰학회와 ‘원풍경(原風景)’]
[②삶을 맞대고, 사랑을 살피고. 미령한 나의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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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직 열병(nostalgic fever): 노상관찰학회와 ‘원풍경(原風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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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에서 노스탤지어는 불가능한 감정, 적어도 치유는 불가능한 감정이다.
치료법이라곤 시간 여행밖에 없다.”1)
-사이먼 레이놀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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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크 데리다(Jacque Derrida, 1930-2004)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기억과 그 기억의 근원 혹은 기원으로 회귀하려는 아카이브의 강박적인 힘을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이라고 진단했다.2) 그러나 기억의 근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근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흥미롭게도 아카이브의 강박적 열병은 ‘노스탤지어 서사’와 꼭 맞아떨어진다. 그리스어로 귀향을 뜻하는 노스토스(Nostos)와 괴로움을 의미하는 알고스(Algos)의 합성어인 노스탤지어는 지나간 시대나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말한다.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불확실성들이 민족 정체성을 위협할 때 노스탤지어가 대두되곤 하였는데, 이때의 노스탤지어 서사는 “이상화된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nostalgia for an idealized past)”이며 정확한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여기서 노스탤지어가 수립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정확한 모습 혹은 실재적 모습이라기 보다는 현재가 요청하지만 결핍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3) 결국 존재하지 않는 과거로 회귀하길 강박적으로 바란다는 점에서 노스탤지어는 열병으로 볼 수 있겠다.
2.
노스탤지어는 조금씩 외양을 바꿔가며 시대를 막론하고 등장하여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이를테면 1970년대 일본에서는 ‘원풍경(genfukei, 原風景)'에 대한 요구가 만연하였다. 'げんふうけい(原風景)’의 일본말사전을 살피면 “1. 원체험으로 생기는 여러 이미지 중, 풍경의 모양을 갖고 있는 것 2. 변화하기 이전의 그리운 풍경”을 가리킨다.4) 즉 ‘옛모습’이나 ‘오랜 모습’을 담고 있는 풍경으로 보면 될 것이다. 1972년 오쿠노 다케오가 제안한 ‘원형 경관 이론’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겐후케이의 흐름은 일본의 각 도시들로 하여금 ‘고향’만들기, ‘지역’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 전략을 펼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지방도시지역개발에서는 ‘고향(ふるさと)’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였고 대도시의 경우 급격한 도시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잃어버린 원래의 모습에 향한 상실감이 표출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1970년대 일본이 고도경제성장 이후 안정성장기로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가치관의 변화가 꾀해진 것이 있다. 당시 고도경제성장기 동안 은폐되었던 사회문제가 대두되었는데, 특히 제1차 오일쇼크(1973)로 환경문제, 복지문제, 물가급등과 경기침체, 실업자 증가와 같은 시대적 상실감 등이 사회 문제로 제기된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 성장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을 뒤돌아봐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가치관이 전환되었다.5)
3.
이렇듯 노스탤지어적 물결이 확산되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순수한 일본다움의 발견, 요컨대 진정성을 찾아내길 시도하였으며, 일부 예술가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1960년대에 길거리에서 예술과 비예술(혹은 반예술)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던 아카세가와 겐페이(Akasegawa Genpei)는 1970년대 이르러 공식적으로 미술계 활동은 접었지만, 1980년대까지 계속하여 노상에 나와 도시를 기록하길 시도했다. 이때 그가 기록하고자 한 것은 도구의 기능을 잃고 생산성의 네트워크에서 탈락했으나 여전히 인간이 보존하고 있는 존재로, 그는 이를 “초예술 토마손”이라 명하였다(도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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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Example of a "Useless Staircase" or "Pure Staircase" Thoma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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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토마손 활동을 통해 노상에 훨씬 흥미로운 것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카세가와는 1986년 건축사학자 후지모리 데루노부, 미나미 신포 등과 함께 각자 관심의 대상을 노상에서 발견하고 기록하는 모임 ‘노상관찰학회(路上観察学会)’를 결성했다. 이들은 현장 조사작업(fieldwork)과 관찰의 방법론을 빌려 도쿄 23개구를 모두 돌아다니며 마치 탐정과 같이 길거리에서 아름답고 쓸모없는 존재들을 찾아다녔다(도 2). 여기서 쓸모없는 존재란 “의도의 경계에서 벗어나는 영역”의 것들, 즉 생산되는 대신 발견되고 기록되기를 기다리는 부산물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쓸모’, ‘의도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들의 활동은 지역적, 역사적 특성의 보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제도적 도시 발전 계획을 비판하는 동시에 곧 사라질 위기에 놓인 사물들, 더 나아가 오염될 위험에 처한 ‘도쿄의 원래 모습’에 대한 상실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사라져가는 도시 이미지에 대한 향수에 취해 있던 사회 분위기에 부합하였고 그에 따라 결과물로 출판된 <거리 관찰 연구 입문>은 대중과 매스컴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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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世界一楽しいスベリ台(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끄럼틀), 도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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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허나 노상관찰학회의 활동에서 드러나는 전반적인 내러티브는 일종의 노스탤지어적 충동을 넘어서지 못하는 듯 보인다. 특히 그들의 기록물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순수함’에 대한 요구는 이와 같은 의심을 강화시키며, 이들이 상정한 ‘순수한 거리’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노상관찰학회’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노스탤지어 서사는 불안한 현재에 대한 나름의 역사적 대응 또는 방어적 메커니즘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순수한 도시’의 재현은 아닌 것이다.
본디 노스탤지어는 현재와 과거만큼이나 미래와 연관된 문제이다. 그 열망의 대상은 과거이지만 열망 자체는 현재적이며,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결핍 또는 불안을 벗어난 미래를 전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7)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타임머신이 있더라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상실된 근원적 과거’를 거론할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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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이먼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최성민, 함영준 역 (작업실유령, 2014), 27.
2)Derrida, Jacques, and Eric Prenowitz.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Diacritics 25, no. 2 (1995): 9–63.
3)Peters, Erin (2009) The 'Heritage Minutes' and Canadian collective memory: an analysis of the use of nostalgia and nationalism to build a unifying cultural memory. Masters thesis, Institute of Germanic and Romance Studies.
4)https://ja.dict.naver.com/#/searchquery=%E3%81%92%E3%82%93%E3%81%B5%E3%81%86%E3%81%91%E3%81%84&range=all(2023년 5월 26일 검색).
5)조아라, 「일본 지방도시의 문화전략과 ‘지역다움’의 논리」, 『한국지역지리학회지』 5(2008): 480-491.
6)“토마손”이라는 이름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미국인 선수 게리 토마슨(Gary Thomasson, 1951-)에서 따왔다. 연거푸 삼진을 당하기 일쑤이지만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자리에 있는 메이저리그 출신 토마슨을 “거리의 건조물이나 도로에 부착되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는 무용장물”에 비유한 것이다. 오윤정, 「일본미술응원단: 전위의 우익 코스프레」, 『일본비평』 11(2019), 129.
7)Peter Hodgins, “Our Haunted Present: Cultural Memory in Question,” Topia, 12(200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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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맞대고, 사랑을 살피고. 미령한 나의 친구들에게.
한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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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카이브에 대한 열망은 팬데믹을 지나며 더욱 강화된 듯 보인다. 2020년부터 오프라인 전시장이 문을 닫으며 온라인 전시의 필요성이 급속히 대두되었고, 버츄얼 비짓(virtual-visit) 전시나 SNS를 활용한 작품 발표가 쏟아지는 등 전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예술대학교 졸업전시부터 국립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자료는 빠른 속도로 아카이브를 이룩해 2023년 현재는 그 모든 것이 자연스레 일상화되었다.
언뜻 평등한 접근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온라인 전시/아카이브에도 권력의 작동은 여전하였는데, 자본이 충분한 대형 미술관은 발 빠르게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해 효과적으로 전시 아카이브를 축적해내는 한 편, 소규모 대안 공간 등은 무기한 휴무나 폐업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눈에 띄게 많은 대안 공간이 문을 닫았고 어떤 곳은 SNS계정 자체도 폭파하며 아카이브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하였다.1)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모으고 그를 지속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본력과 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팬데믹을 통해 손쉽게 증명되어버린 것이다.
2.
이는 '아카이브'가 시작된 지점부터 함께한 맹점이기도 하다. 현대 아카이브 체제는 19세기말 네덜란드에서 시작했으며, 주요 수집 대상은 공적인 자료였다. 이 시기에는 기록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철저히 수동적인 자세로 자료를 다루어야 했다. 자연히 아키비스트(archivist)는 수동적이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국가와 공공이용자들에게 봉사하는 직업이 되었다.2) 즉, 다수에게 기억되어야 할 자료를 모으고 선별하는 아카이브의 특성상 선별된 자료는 국가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본과 권력의 집합체가 아카이브라면, 자본도 권력도 없는 집단의 아카이브는 가능할 것인가?
전통적인 방식의 아카이브라면 이 질문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테다. 그렇다면 우리는 할 포스터의 『아카이브의 충동 An Archival Impulse』(2004)에서 힌트를 얻어보자. 그는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 타시타 딘(Tacita Dean) 등 동시대 예술가들이 아카이브를 예술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일례로 타시타 딘은 "좌초된, 한물간, 그렇지 않으면 열외로 밀려난 사람, 사물, 장소"를 추적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한다.3) 전통적 아카이브가 객관적인 ‘도큐멘테이션’ 개념으로 사용된 것에 반해, ‘아카이브 아트’는 아카이브의 방법론을 취한 채 새로운 담론과 맥락을 만들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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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소환수를 찾아서> 일부 , 1채널 비디오, 8' 24",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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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 12월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살친구’의 전시는 동일한 질문에 대해 다정한 대답을 건네준다. 《버서커와 소환사》(2022.12.15.-2023.01.02.)에서 첫 선을 보인 <소환수를 찾아서>는 한 회차의 게임처럼 구성된 영상 작업으로, 디지털 공간에 흔적만 남은 퀴어 작가들을 좇아 분투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5) 작품은 이상기후로 인해 전기를 이용하기 어려운 가상 세계를 설정한 후, 살친구 캐릭터가 소실된 아카이브 속에서 '소환'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통해 과거에 활동했던 퀴어 작가와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굳이 이상기후로 인한 미래를 가정하지 않아도, “대다수 퀴어 예술가의 자료가 소실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말은 작금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검색창에 퀴어 정체성을 지닌 작가를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도 많지 않을뿐더러 그나마도 url이 막혀 자세한 내용은 확인조차 어렵다. “정보를 겨우 찾아내도 그 뒤의 ‘확인 되지 않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대사는 그 막막함을 대변한다(도 1). 자본도 권력도 없는 집단의 아카이브는 그렇게나 연약하다.
희미한 아카이브를 추적하고 파헤쳐 보이지 않았던 사람을 찾아내 관계를 맺고 그것을 다시 아카이브하는 살친구의 방식은 다정하다. 연약함을 절감하는 상태로 다시금 관계를 맺는 이들의 아카이브 아트는 포스터의 말처럼 “때로 우울하고, 종종 아찔하고, 항상 불완전하다.”6) 그리고 그 모든 불안함을 감내하며 완성된 <소환수를 찾아서>는 단절되었던 과거의 끈을 더듬어 현재와 재연결하며 그저 축적하는 게 아닌, 발견의 서사와 인터뷰를 도입해 보다 단단한 연결망을 설정한다. “잘못된 위치에 놓여 잊힌 과거를 탐색하고, 그 과거가 지닌 다른 기호들을 대조하며, 현재를 위해 남아있을 법한 것을 확인하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7)
4.
남겨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친구들, 우리의 미령(靡寧)한 친구들. 서로를 놓지 않으려고 계속, 새롭게 손을 내미는 퀴어한 아카이브 아트의 방식은 전통적인 아카이브처럼 단단하거나 규격화되지 않은 채 유동적인 방식으로 생성된다.
아카이브와 아카이브 아트는 다르다. 아카이브 아트는 아카이브의 방법론을 채택하여 하나의 담론을 만드는 것까진 성공할 수 있으나, 그 역시 아카이브의 ‘대상’이 되어 보존되지 못하면 작품과 담론 역시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태여 ‘대안적 아카이브’로써 퀴어 아트를 말하지는 않겠다. 나의 미령한 친구들은 이미 너무나 다정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맞대어 서로를 기억하며 산다. 그렇게 삶을 맞댄 채 사랑을 살피며 손을 잡는다면 대안적이지 않아도, 혹은 아카이브가 되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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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안 공간의 유지만 해도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문을 닫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나, 팬데믹 시기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었음은 명백하다. 을지로의 가삼로지을, 혜화의 아웃사이트, 관악의 산수문화, 연희-연남의 플레이스막, 성수 볼록 등 다양한 위치의 대안 공간이 장기 휴무 및 폐업하였다.
2) 이종흡, 「서양 기록학계의 기억담론-『아카이브 병』을 전후로」 『역사와 경계』 109(2018): 462-463.
3) 할 포스터, 이주연, 조주연 역, 아카이브의 충동, 호랑이의 도약 http://tigersprung.org/?p=3208 (2023년 5월 27일 검색).
4)이경래, 「'아카이브 아트(archival art)'의 동시대 기록학적 함의 연구」, 『기록학 연구』 64(2020): 36.
5) 제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마법진을 그려서 소환하는 ‘소환사’가 되고 동시에 적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버서커’가 되려한다. 탈영역 우정국 홈페이지, http://ujeongguk.com/berserkr-and-summoner/ (2023년 5월 27일 검색).
6) 할 포스터, 아카이브의 충동.
7) 할 포스터, 아카이브의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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